매일신문

아일랜드서 주목받는 대구 출신 디자이너 송숙영씨

"파리 원단시장, 서문시장 10% 수준이에요"

아일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송숙영 씨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송숙영 씨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대구는 제2의 밀라노를 꿈꾸며 수천억원을 패션계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패션계에는 '차세대 젊은 디자이너가 없다'는 탄식만이 들린다. 지역의 한 중진 디자이너는 "지금 대구에는 40대 디자이너가 젊은 축에 속하는 상황"이라면서 "그동안 디자이너 하나 남기지 못한 정책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틀을 깨면 의외로 길이 보일지 모른다. 아일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대구 출신 송숙영 씨를 만나본다.

2010년 3월,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오스카 수상 후보자인 아일랜드 배우 캐서린 오로크가 레드 카펫을 밟았다. 시상식의 꽃은 여배우의 드레스. 그날 캐서린이 입은 드레스는 오묘한 퍼플 빛깔의 드레스로,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캐서린은 세계적 명품 드레스 협찬을 마다하고 직접 디자이너를 찾아가 돈을 주고 구입해 입었다.

그 드레스를 만든 사람은 한국인 디자이너 송숙영(37) 씨. 아일랜드에서 디자이너 경력이 5, 6년에 불과하지만 세계 무대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그 드레스를 계기로 현지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그는 패션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어릴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 그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종이인형 놀이를 할 때면 옷을 직접 만들고 색칠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계명대 중국학과 재학 때에도 줄곧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 비로소 자신의 꿈을 찾은 것은 20대 후반 즈음이었다.

"영어학원 강사로 돈을 벌면서 패션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어요. 그때 패션의 기본에 대해 많이 배웠죠. 패션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남편을 만났어요."

그는 우연찮게 아일랜드 사람인 남편을 만나 진로가 바뀌었다. 2005년 결혼과 동시에 아일랜드로 떠나온 것. 하지만 그는 꿈을 놓지 않았고, 그곳에서 패션 전문 실무교육을 받았다. 이국땅에서 디자이너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현지인들과의 기 싸움은 물론 디자인을 도용당하는 사건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송 씨는 '타국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고 마음을 다졌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디자인 가능성을 확인했다. "제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옷이 독특하다며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왔어요. 사생활에 간섭 안 하기로 유명한 서양 사람들이 말이죠."

그는 2006년, 운 좋게도 아이리시 댄스 공연에서 커스튬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다. 아일랜드에는 댄서, 가수, 코미디언 등이 차례로 하는 댄스 공연이 인기가 많다. 수천 명 앞에서 선보이는 무대 의상을 송씨가 만들어 호평받았다. 그 공연을 계기로 유명한 패션 잡지에 디자인이 실리게 됐고 파리 프레타 포르테 패션쇼 참가를 제의받았다.

"그때 기성복인지, 오뚜꾸뜨르인지 결정해야 했어요. 저에겐 맞춤옷이 더 맞다는 판단 하에 프레타 포르테 패션쇼 참가는 거절했어요."

그는 아일랜드의 하우스 파티 문화에 어울리는 드레스를 만든다.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드레스를 입는 파티가 일상적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그의 디자인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과 아일랜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뛰어난 감각과 손재주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한국에선 패션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해도 명품 카피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슬픈 현실이에요. 외국에선 디자인을 베끼면 디자이너 생명이 끝났다고 판단하는데 말이죠."

원단 시장조차도 복제 일색이다. 패션쇼에 나왔던 원단과 디자인들이 시장에 쫙 깔린다. 그래서 우리만의 독특한 감성을 지닌 디자인이 나오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는 무조건 한국적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한복 선이 아름답다고 극찬하면서도 외국인들은 입지 않아요. 한국적 미는 서양 문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것 속에서 외국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야죠."

그는 외국의 패션 시장과 한국 시장의 연결고리는 의외로 많다고 주장한다. 런던, 파리의 원단시장도 서문시장의 10%쯤밖엔 안 되고 원단도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 원단 시장도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적극 이용하면 직거래 물량도 꽤 많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 역시 홈페이지(www.suyung.com)를 통해 제품을 알려왔고, 그것이 주효했다. 그는 현지에서 옷에 대한 반응이 좋아 대구에서 아웃소싱 업체를 찾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고향인 대구를 방문했다.

최근 그는 중세 고딕 건축 양식의 '선'에 주목하고 있다. 딱딱하지만 섬세한 건축의 선을 새롭게 해석해 패션에 활용하는 것. 풍부한 여행과 그곳에서 마주치는 일상적인 감정들은 그에게 끊임없는 패션의 영감을 더해주고 있다.

"기본은 충실히 연마하되 거기에 안주하면 안 돼요. 실수를 하더라도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야죠. 앞으로 커스튬 디자인과 오뚜꾸뜨르에 몰두해 영화와 연극으로도 진출하고 싶어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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