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시가스 장호익 공무부 팀장은 수영 마니아다. 수영 실력은 이미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 50세 이상 그룹에서 자유형 1위, 접영 2위를 차지할 만큼 빼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의 수영 실력은 사내 동호회 활동을 통해 다져진 것이다. 장호익 팀장은 "처음에는 취미로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동호회 없는 직장 생활을 생각할 수 없다. 정기적으로 동호회 회원들과 연습한 것이 수영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사내 동호회 전성시대다. 동호회 없는 직장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야구·축구·배드민턴·바둑 등 직장 동호인들이 실력을 겨루는 대회도 부지기수다. 활동 영역도 스포츠 종목 위주에서 문화예술·오락·학습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동호회가 자기계발뿐 아니라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로 인식되면서 기업도 동호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동호회는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동호회를 보면 회사가 보인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는 축구·야구뿐 아니라 댄스·공예·연극·예쁜글씨 쓰기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152개의 동호회가 있다. 1만여 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동호회 활동을 즐길 만큼 활성화돼 있다. 20개의 동호회가 결성돼 있는 야구와 50개의 동호회를 거느린 축구·풋살 종목은 자체 리그전을 벌여 우승팀을 가릴 정도다.
회사도 동호회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공연·전시 등을 열어주고 10명 이상이 동호회를 만들겠다고 신청하면 강사 섭외 등 동호회 활동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준다.
반면 대구의 한 중소기업인 A사의 경우 한때 사내 동호회 활동이 왕성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장기간 계속된 경기침체로 구조조정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동호회 조직까지 와해되었기 때문. 회사 관계자는 "5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할 때는 등산·낚시·바둑·MTB 등의 동호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동호회 활동을 했던 동료들이 구조조정 파고에 휩쓸려 회사를 떠나면서 동호회도 존립 근거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동호회는 회사의 활력소
대구도시가스에는 축구·야구·볼링·수영·등산·낚시·스키 등 11개의 동호회가 결성돼 있다. 대구도시가스에서 동호회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전체 직원 360명 가운데 80%인 290명이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어 동호회가 사내 결속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특히 신입사원은 동호회 가입이 관례처럼 돼 있어 동호회가 회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
서정걸 홍보팀 과장은 "대구도시가스는 본사 및 5개 지사로 나눠져 있어 서로 얼굴 보기가 어렵지만 어느 조직보다 소통지수가 높다. 동호회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고 인간적인 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지면서 업무 효율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호회가 사기 진작과 성취감을 향상시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대구도시철도공사에는 유난히 실력 있는 동호회가 많다. 테니스 동호회는 올 4월 열린 제16회 달서구테니스연합회장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탁구 동호회도 올 5월 개최된 대구시동구연합회장배에서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올 6월에는 축구와 족구 동호회가 각각 제19회 달서구청장기 생활체육대회와 제3회 대구남구족구연합회장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배드민턴 동호회는 이달 5일 열린 제13회 직장대항 생활체육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 동호회가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우수 동호회를 선정, 표창과 시상금을 지급하며 직원들의 성취욕을 고취시키는 회사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탁구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운선 시설부 차장은 "오랫동안 동호회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다 보니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직장 문화가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 동호회 활동을 통해 얻은 성취감은 업무에도 이어져 동기 부여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2008년 직장인 967명을 대상으로 '사내 동호회'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2%가 사내 동호회 활동이 직장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응답자의 34.2%가 '좋아지는 사내 분위기와 함께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것 같아서'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이어 '사내 대인관계를 넓힐 수 있어서(30.8%)', '직장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줄 것 같아서(13.5%)' 등의 순이었다.
◆이색 동호회
대구도시가스에는 공부하는 동호회인 '가스탑'이 있다. '가스탑'은 가스업계 최고의 자격증으로 꼽히는 기술사와 기능장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결성된 동호회다. 기술본부 소속 직원들의 소모임 형태에서 지난해 정식 동호회로 출범했다. 현재 44명의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시험 정보도 공유하면서 최고의 기술인이 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스탑'은 10명의 기능장을 배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앞으로의 목표는 기술사를 배출하는 것.
'가스탑' 회장을 맡고 있는 변장환 공급지원팀장은 "가스 기술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뜻에서 동호회 이름에 '탑'(TOP)을 넣었다. 회원들의 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교재를 모두 구입한 뒤 장점만 취해 자체 교재를 만들어 공부하고 있다. 10월 1일에는 회원 8명이 응시한 기능장 2차시험 결과가 발표되는데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매년 기술사 1명과 기능장 10명 배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는 웃음을 선사하는 동호회가 있다. 바로 레크레이션 동호회인 '레크마니아'다. 2002년 일터에 활력을 불어 넣을 목적으로 결성된 '레크마니아'는 구미사업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했다. 각종 사내 행사에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음치료와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회원들이 많아 외부에서도 자주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한다.
동호회가 회사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대한항공 직원 10명으로 구성된 춤 동호회 '직딩슈주'(직장인 슈퍼주니어의 준말)는 대한항공의 간판 스타다. '직당슈주'의 인기는 그룹 슈퍼주니어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인터넷에 올린 뮤직비디오는 클릭수가 10만 건을 훌쩍 넘었다. 또 SBS 오락프로그램인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한 공중파 방송에서 '다큐를 찍고 싶다'는 제안을 했을 정도로 '직딩슈주'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봄 결성될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직딩슈주'가 인기를 끌자 대항항공은 홍보도우미로 '직당슈주'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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