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iN] 이상규 경북대 국문과 교수

학자도 실천하고 사회기여하는게 소신…선거법 위반은 꿈에도 생각 못해

추락하는 대구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이상규(56) 경북대 국문과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였고 지역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였기에 그만큼 그에게 거는 교육계의 기대가 컸다. 이를 저버리지 못한 이 교수는 올 초 교육의원 선거에 뛰어들었고 50%에 가까운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법이 발목을 잡았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 6·2지방선거 기간에 자신이 소개된 신문기사 3천700여 부를 대학동문회 등의 명의로 일부 유권자들에게 우편발송한 혐의로 기소됐다. 2심 판결이 나기 전 이 교수는 사퇴했다. 자신의 교육철학을 펴 보지도 못하고 '위기의 대구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겠다'는 유권자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만 셈이다. 1심에서는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당선이 유지되는 벌금 90만원을 받은 터라 그의 사퇴는 더욱 안타까웠다.

사실 이 교수의 교육의원 출마는 그 자체가 지역 교육계의 화제였다. 경북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지난해 1월 차관급인 국립국어원장 임기를 마치고 대구로 내려올 때만 해도 대구시 교육감으로 출마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육감보다 교육의원을 선택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대구 정서와 하향 지원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한국 정치 구도를 고려할 때 그의 선택은 의외였다.

"서민을 위해 일하는 자리에 높고 낮음이 없고, 첫 도입되는 교육의원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선거 운동을 하면서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9일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은 뒤 두문불출한 그를 최근 수성구의 한 식당에서 어렵게 만났다. 몇 차례 인터뷰를 고사했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교육에 대한 열정과 뜻을 적극적으로 알릴 기회가 없지 않으냐는 간곡한 부탁 끝에 얻어낸 약속이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그는 그동안 맘 고생이 심했는지 초췌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적극적이었고, 답변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았다. 비록 교육의원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자신의 교육철학이 대구 교육을 위해 작은 밀알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질문이 다 끝났는데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밤늦게까지 대구 교육을 위해 당부하고픈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법정까지 가게 됐는데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선거법 위반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선거에 처음 나왔고 조직원들 중 대부분이 대학교수 출신들이라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사실 선거 초반이었지만 승리를 장담했다. 결코 표를 얻기 위해 편지를 발송한 것은 아니다. 결과에 관계없이 선관위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에게 홍보성 편지를 보낸 것은 큰 실수였다.

-항소심에서 벌금 90만원을 받았다. 미리 사퇴하지 않았다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억울하지 않나.

▶많은 고민을 했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지만 선거법을 위반했고 평생을 교육자로서 명예를 지켜오며 산 만큼 불법 부분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싶었다. 특히 총리, 장관 인준 등으로 사회가 시끄러운 마당에 나까지 지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선거를 통해 지지해준 수성구와 달성군 지역 유권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게 될 것 같아 선뜻 결정하기 힘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지지자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 드린다.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체급(?)을 낮췄다는 얘기가 있다. 교육감 대신 교육의원에 도전한 이유는.

▶지인들로부터 교육감 후보로 나서라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 실제 고민도 했다. 그러나 30년 동안 대학교육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솔직히 초·중등 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의원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평생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려면 '준마도 소금수레를 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MB정부 들어 영어 공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국어학자 입장에서 영어 공교육을 어떻게 보나.

"영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반대하지 않는다. 다문화 시대니까 소통 언어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영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오히려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교육도 병행돼야 한다. 다만 한글과 영어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리 것도 살리고 국제적인 것도 살리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지식정보화 사회에 대비해서 국민형 전자 사전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가 지식 경쟁력 강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놈현스럽다'는 표현으로 고생하셨다. 심지어 네티즌들의 악플로 자살까지 생각하셨다는데 인터넷 언어 폭력을 어떻게 보나.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하다. 하루에 300~400명이 비난전화와 메일을 보내와 전화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기도 했다. 나에 대한 비난과 욕설은 참을 수 있었지만 부모까지 들먹일 때는 '못난 아들놈 때문에 부모님이 욕을 얻어 먹는다'는 생각에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방, 욕설 등 인터넷의 피해를 직접 몸으로 겪고 나니 이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클린 콘텐츠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비어나 속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서둘러 인터넷 폴리스 제도나 인터넷 실명제 도입 등 깨끗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고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국어지킴이 VS 정치적이다' 세간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본인은 어느 쪽인가.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이상화 고택보존 모금운동을 벌일 때부터다. 이때 길거리에서 1억원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교수가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 짓이야'라는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학자도 실천해야 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고 철학이다. 정치란 사회를 보다 밝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행위다. 일부 정치인들의 비도덕성 때문에 정치 자체가 비난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실제 정당 추천제가 있었다면 출마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구 교육을 위해 못다 이룬 꿈이 많으실 텐데 대구 교육 발전을 위해 충고해 달라.

▶대구의 미래와 경쟁력은 교육에 있다. 학력을 향상시키고 학력 격차를 줄이고 부정부패를 없앨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하다. 지역 간 학력 격차 해소를 위해 교육청 예산을 정확한 수요에 맞게 배정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과거 투입된 예산에 기초해서 편의적으로 예산을 배정하기보다 앞으로 예상되는 교육수요에 맞춰 배정해야 한다. 특히 각종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학교급식은 외주로 돌려야 한다. 방과 후 교육 역시 형식에 그치고 있고 교재조차 개발돼 있지 않다. 학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하고 교수법을 만들어 간다면 방과 후 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게 정보화 교육을 강화하고 도서관 등을 변화시켜야 한다. 폭력, 왕따 등 학교 안전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공교육이 아무리 잘 해도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된다. 가정과 학교가 연계한 학생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이상규 교수는=1953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방언조사연구원으로 일했고 1983년부터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로 일했다. 2006년 국립국어원장에 부임했고 지난해 3년 임기를 마쳤다. 방언연구방법론(1988년), 국어방언학(1994년), 방언학(1995년), 경북방언사전(2001년) 등 다양한 방언연구를 내놓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저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대구문화연대 공동대표,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사회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올 초 대구시 교육의원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2심을 앞두고 이달 초 의원직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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