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까지 늦더위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추석이 지났지만 가로수의 잎들은 여전히 푸르다. 하지만 곧 단풍이 들고 그 푸르름도 대지가 빨아들일 것을 공기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오랜만에 하늘을 보니 나의 키는 줄어들고 지구는 더 커진 것 같다. 아마도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다'는 애국가의 가사처럼 여름보다 가을 하늘이 '텅 비고 매우 넓으며 더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진료를 하다가 마음이 공활해진 것이 아니라 공허하고 공황에 빠진 적이 있었다. 20대 환자분이 사랑니를 뽑기로 했는데 사랑니가 똑바로 나지 않고 누워 있고 충치도 있어 다시 진료약속을 해 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 전화가 와서 '사랑니를 뽑아서 보관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기념으로 보관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고는 '치아를 잘라서 뽑아야 하고 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사랑니를 뽑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최근에 사랑니를 뽑아 보관하였다가 나중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데 모르냐는 것이었다. 한순간 시대에 뒤떨어진 치과의사가 된 기분이어서 최근 기사내용을 살펴보니 일본의 한 연구소에서 최근 3명의 공여자로부터 얻은 사랑니의 치수에 들어있는 세포에서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줄기세포를 손쉽게 역분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천덕꾸러기 사랑니가 미래에는 우리의 목숨을 살릴지도 모른다는 기사였다.
사실 2008년도에도 일본의 한 연구소에서 10세 소녀에게서 뽑아낸 사랑니를 3년 동안 냉동보관하다가 인간줄기세포를 발견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수정란을 이용하는 줄기세포연구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상당히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연구팀은 사랑니로부터 만들어진 줄기세포를 상용화하는 데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연구가 2년 전 연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연구 목적이 아니면 아직 맹출하지도 않은 10세 소녀의 사랑니를 억지로 뽑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수정란을 이용하지 않아 윤리적이라 했는데 과연 어린 소녀의 사랑니를 뽑는 것이 윤리적인지 고민한 적이 생각난다.
'진료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떤 어린 소녀가 치아를 뽑아달라고 떼를 쓴다. 성냥팔이 소녀와 닮아 있다. 뽑을 치아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듣지를 않는다. 그리고는 결국 울먹이며 아빠가 아프신데 줄기세포가 필요하다고 제발 자신의 치아를 뽑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나는 발치기구를 들고 어떻게 할지를 몰라 당황하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미래에 이런 꿈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할까? 아직까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결정을 못했기에 가을이 깊어갈수록 더욱 공허해지는 것은 아닐까.
장성용<민들레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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