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A고교 3학년 박정은(18·수성구 신매동) 양은 매일 아침 20분간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해 오전 8시 30분 1교시 시작을 기다린다. 4교시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급식소로 갈 필요가 없다. 박 양의 교실로 배식을 해주기 때문. 오후 수업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박 양의 하루 운동시간은 '0'시간. 박 양은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모자란 잠을 잔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갈 때를 빼고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구 중·고교생들의 체력이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중·고교 체육수업은 앞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어서 학생들의 체력저하 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중·고교생 '약골 체력' 심화
입시전쟁의 최전방에 있는 고3 수험생들에게 체육 시간은 곧 '휴식시간'이다. B고교 3학년 J양은 "일주일에 두 번 체육시간이 있지만 3학년은 입시공부를 위해 자율학습을 한다"고 말했다.
체육시간에 자습을 하는 게 더 좋다는 학생도 있다. 같은 학교 C(18) 군은 "수능시험이 코앞인데 체육시간에 운동으로 땀을 빼는 것보다 편하게 교실에서 쉬는 게 좋다"고 만족해 했다.
체육수업이 재미가 없어 하기 싫다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C중학교 B(13) 양은 "체육시간마다 운동장을 도는데 한 달에 운동장 한바퀴 씩 추가된다. 9바퀴까지 돌아 봤는데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재미있게 체력을 키우는 수업을 할 수는 없느냐"고 불만을 얘기했다.
대구시 교육청의 2006~2009년 '학생 체력급수 상황 표본' 분석 결과 체력급수 평가에서 1·2급을 받은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1 남학생의 경우 2009년 체력 1급 비율은 27.3%로 2006년 48%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고3 여학생 역시 2006년 31%에서 2009년 22.3%로 하락해 체력 저하가 심각했다.(표 참조)
이에 대해 교사들은 "고등학생의 경우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꼬박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에 체육수업이 아니면 운동장을 밟고 뛰어놀 시간이 거의 없다"고 했다.
◆거꾸로 가는 체육정책
대구시교육청은 갈수록 저하되는 학생들의 체력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여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교육과학기술부의 체육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시교육청은 자율적인 체육 활동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학교 스포츠 클럽 대회'를 개최했다. 초·중·고 일반 학생들이 주말과 공휴일, 방학을 이용해 4월부터 11월까지 축구와 피구, 풋살 등 각 종목별로 실력을 겨루는 시간을 가졌다. 정규 체육수업으로 부족한 운동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였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교육과정(고시 제 2009-41호)에 따르면 교과부는 각급 학교에 교과별 수업시수를 20% 증감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했다.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해 다양한 수업을 허용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영어와 수학처럼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업 시간만 증가했고, 체육 수업 시간은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다.
시교육청 평생체육건강과 정창화 장학관은 "교과부는 교육 목표를 '지(智)·덕(德)·체(體)'에서 '체·덕·지' 순으로 바꾸자고 하지만 어순만 바꾼다고 체육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으로 체육수업 시간이 확보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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