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종전 선언으로 이라크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 무기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사과의 말은 없었다. 어떤 미사여구로 이 전쟁을 포장한다 해도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안다.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군대를 거두어가면 그만이겠지만 이라크는 사정이 간단하지 않다. 10만 명의 이라크 사람이 죽었다. 미군도 4천400명이 전사했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잃었다. 이라크는 드러나지 않아야 할 종교와 부족 갈등이 드러났으니 그 갈등 치유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이라크는 참혹한 땅이 되고 만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쏟아부은 전비(戰費)는 1천조 원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얻은 결과는 죽음과 파괴, 갈등이다. 이것이 전쟁으로 얻은 성과인가.
맹자는 "춘추번로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다"고 하였다. 노나라의 역사 '춘추번로'는 당시 제후들 사이에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을 기록하고 있지만 의롭다고 할 전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왜인가? 전쟁은 살인과 파괴를 통해 다른 국가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짓이다. 우리가 날마다 TV 화면을 통해서 보았던 이라크 전쟁의 참혹함을 떠올려 보라. 살인과 파괴는 결코 의로운 행위일 수 없는 것이다.
신문에 실린 이라크 전쟁의 종전 소식과 해설 기사를 보고 문득 몇 해 전 일본에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의 평화박물관을 방문하고 일본의 피폭(被爆) 체험에 근거한 전시물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곳에서 처음 들었던 '평화학'이란 학문의 존재였다.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의 글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학문으로 정립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살인과 파괴, 증오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곧 전쟁광이거나 무기상이 아니고서야 평화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평화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가 없다. 어떻게 하면 분쟁을 피할 것인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인가,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은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는다. 물론 평화를 주제로 삼는 논문이나 저작이 아주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쇠털처럼 미세하게 갈라진 오늘날 대학의 학문 분야에서도 '평화학'이란 학문의 이름을 내걸고 강의를 개설하거나 학위를 준다는 말을 듣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평화를 교육한다는 말은 더더욱 듣기 어렵다.
평화 대신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평화와 대척적인 지점에 있는 '경쟁'이다. 개인의 심성이 형성되는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성적 '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방법이다. 타인과의 공존, 다른 집단, 국가와의 평화를 추구하는 공부는 이 사회 어디서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란 아이들이 과연 평화를 추구할 것인가, 추구하자고 해도 그 방법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전쟁보다 평화가 우리 사회가,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이라면 평화를 어떻게 이룩할 수 있는 것인지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다시 그것을 학교와 사회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평화학이란 학문은 아마도 국어보다 수학보다 영어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과목이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도 평화학과가 만들어져야 마땅하다. 평화학이 초'중'고등학교의 정식 과목이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사족. 한국에도 민간 차원에서 평화박물관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사단법인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그 일을 맡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의 평화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그쪽 관계자에게서 한국에서도 평화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란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 제 나라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남의 나라에 가서 들었으니 말이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는 홈페이지가 있다. '평화박물관'으로 검색하면 된다.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바란다.
강명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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