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체력적 문제를 정신력으로 극복한 경기였다. 한국 17세 이하(U-17) 여자 대표팀은 2010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기술적인 면에서 일본에 다소 밀렸지만 이를 정신력으로 이겨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30℃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두 팀 모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이 앞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동점을 만들었다. 특히 선제골로 경기 초반 기선을 제압하고도 전반 11분 골키퍼의 실수로 실점하면서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잘 이겨냈다. 실점 후 경기 분위기가 급속히 일본으로 기울며 끌려가는 경기를 했지만 위축되지 않고 만회골을 터뜨리며 계속 따라붙었다. 승부차기에서도 정신력이 빛났다. 경기 전 '정신력에서 일본에 앞선다'는 최덕주 한국 대표팀 감독의 말처럼 '정신력의 승리'였다.
이날 경기의 승부처는 2대3으로 지고 있던 후반 34분 교체된 이소담의 동점골 상황이다. 감독의 교체 타이밍이 적절했다. 교체 투입 적중으로 동점을 만들면서 한국은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일본은 어릴 적부터 활발한 클럽 활동을 통해 자유롭게 축구를 접할 수 있어 기술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기술적인 면에서 일본에 조금 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도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체계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나지는 않고 이를 정신력으로 커버한다. 일본의 또 다른 장점은 정교한 패스 등으로 미드필드를 장악하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조직력', '시스템' 축구를 하는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시스템 축구가 빛을 발했지만 반대로 이 때문에 위기 때 개성 축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고비를 넘지 못한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이날 한국 U-17 대표팀의 우승은 1999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여자 축구 활성화 정책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초·중·고·대 등 여자 축구팀을 창단하면 연간 1천~5천만원을 3년 동안 지원하는 정부 정책으로 여자 축구팀 창단 붐이 일었고, 초교 등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U-17, U-20 선수들이 성인 대표팀, 실업팀으로 올라가면서 한국 여자 축구는 더욱 발전하고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몇 년 전부터 정부 지원이 완전히 끊기면서 여자 축구 저변이 축소되는 등 위기가 찾아왔다. 실제 초·중교 여자 축구팀과 선수가 30% 정도 줄었고, 이는 2, 3년 후 고교·대학 여자 축구로 연쇄반응을 일으켜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월드컵 3위, 우승 등 여자 축구 선수들은 뛰어가는데 제도와 정책, 행정이 오히려 뒷걸음질쳐서는 안 된다. 어렵게 찾아온 여자 축구의 전성기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선 정책적인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 정책과 제도가 함께 가지 않으면 여자 축구의 미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선수층이 얇아지면 다시 여자 축구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남자 축구와 여자 축구는 다르다. 남자 축구는 부와 명예, 인기 등 비전을 찾을 수 있지만 여자 축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잘해도 대회 후에 달라질 것이 별로 없다. 이번에도 '반짝' 관심만 보이는 '냄비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자 축구에 대한 정책과 제도 등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WK-리그 실업팀에서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여자 축구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연고제를 통한 홈 앤 어웨이 경기 추진, 초·중·고 팀 창단 및 지원 등 여자 축구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차원에서도 여자 축구의 가능성을 보고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어서 여자 축구가 갈수록 더 주목받고 판도 더 커질 것이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정부와 연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여자 축구를 더 발전시켜야 한다.
백종철 영진전문대 여자축구부 감독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