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성구냐 탈수성구냐' 학군 선택이 문제로다

'In 수성구, Out 수성구?' 교육 여건이 우수한 수성구로 전입하려는 움직임과 내신의 유리함을 좇아 수성구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최근 대구 교육계에서 화두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수성구의 한 고교 등굣길 모습(사진은 기사 중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이사를 가야하나…."

대구에서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라면 한번쯤 고민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자녀의 '학군'이다. 그리고 이 고민의 중심에는 '수성 학군'이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수성구 고교 출신자들의 명문대 진학률이 타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면서 이른바 '수성학군'은 서울 '강남 8학군'에 비유되며 늘 대구 교육의 화두가 돼 왔다. 이에 따라 자녀가 중학교에 진학하거나 초등학생 때 '자녀 교육'이란 단 하나의 목적으로 수성구로 이사를 오는 학부모의 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신이 강화되고 수성학군 학교들이 학력 신장을 내세워 경쟁적으로 학생들의 생활 규제에 나서면서 '수성 학군'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실제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수성구 이탈 현상'은 가속화되는 추세다. 타 구·군에서 수성구로 전입한 학생은 2008년 86명에서 2010년(8월 말 기준) 44명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수성구에서 타 구·군으로 전출한 학생은 31명에서 45명으로 늘어나면서 전입과 전출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수성학군'. 이곳을 찾아온 이들과 떠나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성학군에 살아보니

중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자녀를 둔 주부 이모(44) 씨. 달서구 용산동에 살던 이 씨는 '수성학군'을 찾아 3년 전 대구에서 ㎡당 가격이 가장 비싼 황금동 A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너무 경쟁적으로 공부를 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애들이 그런대로 공부를 잘하고 있어 결론적으로는 이사를 잘한 것 같다"고 첫마디를 던졌다.

이 씨는 똑같은 대구지만 교육에 있어 수성학군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애들이 학교와 집을 다니는 동선에 학원들이 자리 잡고 있어 공부하기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학원의 수나 과목별 종류도 다양해 학력 수준에 맞게 학원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과목이라도 학원 강의 난이도가 수성구가 더 높고 학원비도 20% 이상 비싼 것 같다"며 "절대 학습량이 수성구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 씨는 "애들이 처음 전학을 와서는 친구들이 너무 '이기적'이라며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 했다"며 "이사를 온 친구 중에는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수성구 K고 1학년인 S군은 2학기 들어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개학과 함께 머리가 길다며 선생님이 머리카락을 잘라 현재 머리 길이가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S군은 "뒷머리가 짱구라 초등학교 때부터 머리에 유난히 신경을 써 왔다"며 "머리가 짧아진 이후로는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도 가지 싫고 부끄러워 학원을 아예 다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S군의 부모 또한 요즘 고민이 많다. 아버지 S씨는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아들이 머리에 너무 민감해 심각한 일이다"며 "선생님과 면담을 해보니 인근 학교 모두 학습 분위기를 위해 두발 규제를 하고 있고 우리 학교는 중간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S씨는 "애가 크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머리만 아니면 적응에 문제가 없는데 앞으로 남은 고교 생활이 정말 문제"라며 "진지하게 타지역으로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수성구 학교들이 상위권 학생들만 위해 전체 학생들을 너무 획일적인 규제의 틀 속에 몰아넣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수성구를 떠나보니

비 수성구로 학교를 옮긴 수성구 출신의 학생들은 당초의 기대를 십분 누리고 있을까. 대부분은 내신과 학교생활에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수성구의 A사립고교에 다니다 여름방학 전인 지난 6월 남구의 한 고교로 전학 온 김모(18) 군. 김 군은 "전학에 대한 고민은 훨씬 전부터 했지만, 실제 3학년에 올라와서 내신에 대한 불안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며 탈(脫) 수성구 학군의 이유로 '내신'을 내세웠다.

"그 전 학교에서는 내신 받기가 어려웠어요. 잘해야 4등급 정도였는데 지금 학교로 전학을 와보니 내신이 1등급 정도 올랐어요. 만족합니다."

김 군은 자신의 탈 수성구 행이 많이 늦은 편이라고 했다. A고교 재학 시절, 1학년 1학기를 마친 직후 수성구를 떠나는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는 것. "처음으로 내신을 받아보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수성구에선 좋은 내신을 받기가 어려우니까… 적어도 한 반에 한두 명은 남구나 북구 쪽의 학교로 옮겼어요."

학업 열기나 규율은 다소 느슨해진 것 같다고 비교했다. A고교 재학시절에는 교과 교사마다 요구하는 학습의 수준이나 과제물의 양이 훨씬 많았다. 반면 지금의 학교에서는 숨 막히는 경쟁은 덜한 것 같다고 했다. "학교를 옮겨보니까 생활에 여유가 생겼어요. 결국 공부는 학생의 몫이라고 생각해보면 제 경우엔 옮기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탈 수성구의 또 다른 배경은 소위 '수성구 정서'에 염증을 느낀 경우다. 2학년 이모(17) 군은 지난 7월 수성구의 B사립고교에서 남구로 전학을 왔다. B사립고 재학 당시 내신은 40명 중에 30등 정도로 하위. "지금 학교에서는 모의고사를 쳐보니 중간 정도는 되더라"는 이 군은 내신 때문에 전학을 택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예전 학교에선 선생님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그러다 보니 눈높이도 높았지요. 기본적인 사항은 다 안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진행하니까 제 경우에는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 학교에선 제 실력으로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어 좋습니다." 또래 문화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수성구에선 아이들이 공부에 치이다보니 친구 관계도 각박한 것 같았다"며 전학에 대해 만족해했다.

그러나 교육 관계자들은 '묻지마 식 수성구 이탈'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 교사는 "학업 성취도나 학교생활의 만족도가 어느 학교에 재학 중이냐에 다소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수성구 학생들이 단순히 내신에 유리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생각만 가지고 통학 부담이 큰 비 수성구로 전학을 하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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