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오만한 인간, 그리고 자연

지난 휴일 가족과 함께 경북의 한 계곡을 찾았다 기자 특유의 유혹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 숲이 하늘을 가렸고, 골짜기는 끝을 가렸다. 산 내음은 코를 자극했고, 물 바닥은 속살을 내보였다. 숲길은 계곡과 나란히 산을 감싸 돌았다.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은 합쳐지고 또 합쳐져 넉넉했다.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물빛은 맑을 수밖에 없었다. 우거진 숲이 터널을 만든 외길은 교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좁은 길은 깊은 산 속으로 하염없이 이어졌다.

차로 30분 이상 거슬러 오른 뒤 겨우 한 주민을 만났다. 그는 이 계곡을 전북 무주 구천동, 북한 삼수갑산과 함께 '한국의 3대 심곡(深谷)의 하나'라고 했다. 수년 전 우연히 들렀다 반해 아예 도심생활을 접고 터전을 옮긴 그의 사연도 솔깃했다. 그는 2년에 걸쳐 직접 집을 짓고 물을 끌어들여 정착했다. 산과 물, 새와 물고기와 더불어 살고 있었다.

그의 사연과 계곡을 지면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실수를 세 번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탓에 유혹을 접었다. 기자생활 동안 겪은 두 번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경북 오지마을을 보도하면서 세 가구가 사는 깊은 산골을 취재한 적이 있다. 산 속에는 풀을 뜯는 염소 서너 마리와 계곡물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하늘은 손에 잡힐 듯했다. 기사가 나간 뒤 항변성 하소연을 하는 주민 전화를 받았다. 오지마을을 오르는 기슭의 마을 입구가 차량으로 북새통이고, 주변 과수원과 채소밭도 엉망이 됐으니 '제발 위치를 알려주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또 한 번은 대구 인근 자그마한 개울과 절벽을 소개했다. 한적한 시골길 곁에 개울물이 모여 소(沼)를 이뤘고, 소를 감싼 절벽은 소나무와 어우러져 절경을 뽐냈다. 맞은편에는 자그마하지만 유서 깊은 절이 있었다. 2년 뒤 그곳을 다시 찾은 기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인적이 없던 곳에 화투를 치고 고기를 굽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곳에서 만난 스님은 "개울가와 사찰이 쓰레기더미로 몸살을 앓고, 주차장까지 만들었는데도 차량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주변 경관과 맑은 물은 이제 본모습을 잃었다"고 했다. 기자는 차마 신분을 밝힐 수 없었다.

2008년 팔공산 갓바위케이블카 추진 논란에 이어 최근 문경새재와 주흘산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설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경새재 관광객을 감안할 때 경제성은 충분하다는 지자체의 입장이다.

인간과 자연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자연은 변덕이 심하다고 한다. 폭우로 물난리를 일으키고, 태풍으로 차량을 뒤엎고, 이상고온으로 들판을 가르고 수종과 어류 생태계를 교란시키기도 한다. 자연의 변덕은 과연 자연 스스로 일으키는 걸까. 편의와 이기를 쫓는 인간의 오만함이 자연을 화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바위와 흙을 부수고 파헤치고, 나무를 베내고, 매연과 열기를 마구 뿜어내지 않는다면 자연은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을 것이다. 자연이 포악해지지 않게 하려면 인간은 자그마한 불편이나 힘듦을 감수해야 한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댐과 둑을 높이기 전에 나무를 덜 베내야 한다. 숲 향을 맛보러 산 속을 헤매기 전에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산길을 내고 케이블카를 설치하기보다 발품을 좀 더 팔 수도 있다. 그렇게 할 때 자연은 인간을 덜 괴롭히고, 인간은 자연의 혜택을 더 볼 수 있다.

굴삭기와 착암기, 기계톱과 그물을 자연을 향해 도를 넘겨 휘두를 때 그 날과 그물이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두렵다.

김병구 사회2부 차장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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