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 발로 유치장 찾는 노숙자들 숨은 사연은…

"밤기온 뚝, 11월은 돼야 市대책…따뜻한 곳 그리워"

"추위에 떠느니 차라리 교도소에서 콩밥 먹는 게 낫습니다. 제발 유치장에 좀 넣어주세요."

27일 오전 7시 대구 북부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동대구역이 자신의 집이라는 노숙인 K(40) 씨는 책상을 발로 차며 "구속영장을 신청해라. 이래도 안 잡아 넣을 거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K씨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지내기보다 죄를 지어서라도 몸을 따뜻하게 건사할 수 있는 교도소에서 지내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지면서 노숙인들의 생활이 더 고단해지고 있다.

사업 실패 후 10여 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김성종(가명·56) 씨에게 찬 바람은 여전히 가장 무서운 적이다. 최근 아침 최저기온이 12℃까지 내려가면서 김 씨는 길에서 밤을 보내기가 힘겹다고 했다. 그는 "추석 때도 고향에 가보지 못했는데 날씨까지 힘들게 하니 더 서글프다"며 "쪽방에라도 들어가 추위를 잊고 싶지만 빈털터리 신세라 한낱 꿈일 뿐"이라고 했다.

어눌한 말투의 이정수(가명·43) 씨는 "요새 갑자기 추워져 소주라도 한 잔 얻어마시고 몸을 데워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길바닥이 곧 집인 노숙인들은 10월이 겨울의 시작이라고 했다.

대구시는 지난 3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노숙인 보호에 관한 조례'를 제정, 노숙인 실태조사를 비롯해 쉼터와 상담보호센터 설치는 물론 PC방, 만화방을 전전하는 예비 노숙인들도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8월 기준으로 대구시에 등록된 노숙인은 거리 노숙인 176명, 쉼터 노숙인 126명 등 모두 302명이다. 그러나 관련 조례와 달리 PC방과 만화방, 고시원 등에서 지내는 예비 노숙인은 파악조차 되지않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규정상 11월부터 동절기로 보기 때문에 10월이 지나야 대책 마련에 들어간다"며 "고시원이나 PC방에 있는 사람들이 노숙인인지 아닌지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어 실태조사에서 제외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구 노숙인상담지원센터 현시웅 소장은 지난해 동절기 대책을 짜깁기하는 식의 안일한 대책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현 소장은 "정확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응급 서비스부터 고용 지원을 포괄하는 연도별 노숙인 지원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노숙인들도 우리 사회가 품어줘야 할 사회적 약자임을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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