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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화'의 이색 커튼콜, 소품용 배추 복지시설 전달

▲대구시립무용단원들이 공연을 마친 뒤 무대 소품으로 썼던 배추를 무료급식소 운영자인 김금옥 씨에게 전달하고 있다.
▲대구시립무용단원들이 공연을 마친 뒤 무대 소품으로 썼던 배추를 무료급식소 운영자인 김금옥 씨에게 전달하고 있다.

24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대구시립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의 제58회 정기공연 '시인 이상화(李相和)의 마돈나'가 끝난 뒤 무대 위에 무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서로 돕고 사는 집'(대구시 남구 대명동)을 책임지고 있는 김금옥 씨였다. 그녀와 함께 온 사람들은 각자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 자원봉사로 이 식당에서 일을 돕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공연이 끝나고 밤늦은 시각이었음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드릴 배추를 준다는 데 시간이 문제겠느냐"며 웃음을 지었다. 잇따른 리허설과 공연 뒤라 지쳤을 게 분명한 배우들도 신바람이 난 듯 배추를 트럭에 실었다. 대구시립무용단과 무료 급식소 자원봉사자들의 만남은 시립무용단이 '시인 이상화의 마돈나' 공연에 무대소품으로 썼던 배추를 이 무료급식소와 시립 희망원에 보내기로 하면서 이루어졌다.

무용작품 '시인 이상화의 마돈나'는 대구가 낳은 시인 이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를 모티브로 한 현대무용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 배추는 절망과 허무를 뚫고 솟아나는 희망과 꿈을 상징한다. 이번 공연에는 모두 220 포기의 배추가 소품으로 쓰였고 이 중 70포기는 무료급식소 '서로 돕고 사는 집'에, 나머지는 150포기는 시립 희망원에 전달됐다. 무대 위에서 희망과 꿈을 상징했던 배추는 무료급식소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에게 또 다른 꿈과 인정으로 부활한 셈이다.

김금옥 씨는 "올해는 배추가 비싸 김치를 어떻게 담그나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또 하늘에서 배추를 내려주시니 큰 시름을 덜었다"며 기뻐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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