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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멧돼지 눈앞에서 아차… 영주 소탕작전 실패

29일 오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한 야산에서 엽사들로 구성된
29일 오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한 야산에서 엽사들로 구성된 '영주시 유해야생동물구제단' 소속 대원들이 농작물 피해가 신고된 현장에 출동, 사냥개를 앞세우고 포획활동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29일 오후 2시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한 야산. '영주시 유해야생동물구제단' 소속 엽사 8명이 모였다. 이들은 잿빛 군복과 빨간 조끼 복장에 허리에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총알이 박힌 탄띠가 둘러져 있었다.

이어폰과 마이크를 갖춘 고성능 무전기를 가슴에 꽂고서 멧돼지를 잡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영주엽도회 권영달 회장이 "오전에 주변을 둘러봤는데 돼지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며 "이번에는 밑에서 위로 개들을 풀어서 모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멧돼지 소탕 전략을 밝혔다.

10분 뒤 엽사들은 멧돼지가 이동할 길목에 각자 자리를 잡았다. 우리에 갇혀있던 사냥개 15마리가 밖으로 나오자 코를 바닥에 대고서 멧돼지 냄새를 따라 움직였다.

한쪽 팀이 무전기를 통해 "발자국이 넘쳐난다. 여긴 멧돼지 은신처로 보인다"며 기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시간 가까이 개들이 산을 돌며 멧돼지를 찾아다녔지만 성과는 없었다. 엽사들은 길목을 좀 더 위쪽으로 옮겼다. 곳곳에서 멧돼지가 다녀간 흔적이 눈에 띄었지만 낮시간대에는 숨어지내는 터라 찾기 힘들었다.

권 회장을 따라 간 인근 한 과수원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주변 땅이 모두 파헤쳐져 있었고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 등 농작물이 뿌리째 뽑혀 있었다. 멧돼지가 음식을 먹기 위해 큰 몸집으로 나무를 들이받았기 때문이다.

그때 무전기에서 "아쉽게도 눈앞에서 놓쳤다. 오늘은 철수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 말에 엽사들은 3시간 동안 곤두섰던 긴장이 풀렸다. 간간이 들리던 사냥개 짖는 소리도 멎었다. 기대했던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멧돼지 소탕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권 회장은 "인근 과수원의 피해가 워낙 많아서 꼭 소탕하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엽사들은 여러 마리의 사냥개가 함께 멧돼지를 따라가 공격해야 하는데 이번엔 서로 흩어진 채 몰이를 해서 소탕에 실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엽사들은 사냥개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박찬섭(55) 엽사는 "한놈은 '황진이'라고 지었더니 꼭 기생처럼 사냥은 안중에도 없고 애교만 부린다"며 "'반달'이라는 녀석은 진짜 사냥을 잘했는데 '반'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반년 만에 사냥터에서 사고로 죽었다"고 아쉬워했다. 옆의 한 엽사는 "지금 데리고 있는 녀석들이 오래 살라고 '순둥이', '예쁜이'로 이름을 붙였다"고 거들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엽사들은 멧돼지 소탕에 실패한 것이 아쉬운 듯 자신들의 총을 만지작거렸다. 다음엔 꼭 잡아 농가의 피해를 막겠다는 다짐을 하며 각자의 차에 올라섰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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