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송이

백옥 같은 살결에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맛 '최고'

고향집 부엌 앞 추녀 밑에는 작은 송이 한두 뿌리가 매달려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송이는 먹기 위한 용도도 아니고 자린고비 영감의 굴비처럼 쳐다보고 입맛 다시는 음식도 아니었다. 외할머니께 물어보면 "너는 몰라도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배가 아플 때 달여 먹는 약이라고 했다. 그래서 송이에 대한 선입관은 하늘에 걸어두고 미라가 될 때까지 그냥 쳐다보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뱅이가 먹는 음식 아닌 귀족식품

송이는 가난뱅이가 먹는 음식은 아니다. 사카린 한 숟갈도 살 돈이 없어 맨개떡을 씹어 먹는 판에 귀족식품인 송이를 거론하는 것조차 외람이자 불경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을 얻고도 여러 해가 지나고 나서야 송이를 맛볼 수 있었다. 그것도 내 돈으로 사먹은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동창이 고향에서 송이 경매장을 열면서 뒷구멍으로 빼돌린 것들을 얻어먹었을 뿐이다.

친구로부터 "요즘 송이가 많이 나오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저녁답에 한 번 내려오라"는 기별이 왔다. 내친김에 그날 바로 내려갔다. 경매 마당은 온통 송이판이었다. 친구는 저울질하기 전에 자루에 담겨 있는 송이 한두 개씩을 집어내며 "야야, 대구에서 손님이 왔다 앙이가"라며 능청을 떨었다. 그러면서 삥땅한 송이를 허리춤 뒤로 넘겨주면 다른 친구가 얼른 받아 챙겼다. 한 시간이 채 안 돼 큰 냄비에 그득할 정도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송이는 현찰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절이어서 정품을 먹는다는 것은 꿈 같은 얘기였다. 송이 빼돌림 작전에 가담한 몇몇 친구들은 그 길로 시장통에 있는 '도라무통집'으로 갔다. 난생 처음 송이를 만난 내가 "고기 없이 그냥 송이만 먹느냐"고 물어봤더니 "버섯의 양이 적을 땐 닭고기나 소고기를 섞어 먹지만 충분하면 송이만 먹는다"고 한 수 가르쳐주었다.

일등품은 흙만 털어 내고 날것으로 먹어

송이 중에서도 일등품에 해당하는 물건들은 뿌리의 흙만 털어내고 칼로 썰어 날것을 그냥 먹는 것이 최고라고 했다. 그 살결은 바로 백옥 같았고 맛은 글로는 표현하지 못할 진짜 오묘한 맛이었다.

옛날 어른들은 버섯의 서열을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고 정한 적이 있다. 그렇게 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송이에 대한 시샘이 과하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능이도 깊은 산간에서 자라는 귀한 것이지만 생긴 모습이 우선 천박하고 속에 개미와 벌레가 들어 있어 고결미는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송이는 생김새 자체가 이 세상의 생성과 번성을 지배하고 있는 무엇을 닮아 멋스럽고 맛 또한 그것에 걸맞게 감미롭다.

일본 사람들은 송이를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많은 양에 기뻐하지만 일본인들은 적은 양에도 행복해한다. 그들은 송이에 쇠칼을 갖다 대지 않는다. 대나무 칼로 썰어 맨소금에 찍어 먹는다. 은박지에 꽁꽁 싸맨 송이 한 뿌리를 밥솥에 넣었다가 끄집어내 돌려가면서 향을 즐길 뿐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 그들은 송이의 향을 방해하는 참기름이나 간장 등 소스 종류는 되도록 멀리 한다.

가을비 적당히 내려야 송이'단풍 풍년

송이와 단풍은 가을비가 적당히 내려 주어야 발육과 빛깔이 제대로 된다. 가을 가뭄이 들면 송이는 발아하지 못하고 나뭇잎은 단풍이 들기 전에 낙엽이 되어 바스러진다. 작년에는 촉촉한 가을비가 내려 주기를 염원했지만 하나님은 너무 바쁘셔서 나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셨다. 지구 온난화 탓으로 송이 한 조각 씹어 보지 못하고 고운 단풍 색깔 눈에 한 번 넣어 보지 못한 채 가을을 그냥 보내야 했다.

올해는 송이와 단풍이 풍년이란 기쁜 소식이 들린다. 총각 고추 구경도 제대로 못해 본 산골 처녀가 송이 따러 가겠다고 우기며 나서는 그런 풍성한 가을이 오나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