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도서관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

●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 /스가야 아키코/지식여행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를 연결해 주는 국제 항공의 개척자, 팬 아메리칸 항공의 창설자인 주안 테리 트리페는 원래는 단지 비행기 애호가일 뿐이었다. 때는 마침 대공황 시대. 구인란을 뒤적이고 있는 남자들과 달리 그의 가슴속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철도, 선박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속도와 운송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하늘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외국 우편 운송의 하청을 맡는 항공 회사를 매수했다. 어느 날 도서관의 지도 코너에서 하와이와 괌 사이에 작은 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세계 최초의 태평양 항로 개설의 계기가 되었다. 그곳을 급유기지로 하면 비행기를 괌까지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거나 조사를 하기 위한 장소만이 아니다. 과거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소중히 전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재를 제공한다. 의욕과 아이디어와 호기심 넘치는 시민을 풍부한 소장 자료에 빠져들게 하고,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아낌없는 원조를 제공한다. 그것이 머지않아 사회를 활성화시킨다고 믿으며……."

출간된 직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스가야 아키코의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을 다시 펼쳐본다. 주민들의 생활공간 곳곳에 실핏줄처럼 촘촘히 자리 잡은 마을도서관 네트워크를 꿈꾸는 나에게 이 책은 도서관이 지닌 가능성의 확장된 의미를 보여준다.

1911년에 세워진 뉴욕 공공도서관 본관에는 5천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약 5천300만 점의 소장품이 있다. 세계에는 약 7천 종류의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3천 종류의 언어로 기록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책장을 모두 연결하면 200km 정도가 된다. 이 도서관의 특성은 세계 유수의 컬렉션을 자랑하면서도, 낮은 문턱으로도 세계 최고라는 점이다. 사용 목적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나 국적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시민의 대학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라는 이 도서관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자료를 찾아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전문 분야로 특화시킨 대학원 수준의 4개의 연구 도서관과 커뮤니티에 밀착한 85개의 지역 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립이다. 그러면 누가 뉴욕 공공도서관을 설립한 것일까?

19세기 중반 신흥도시로 급성장을 하고 있던 뉴욕시의 지적 리더들은 뉴욕을 문화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도서관의 충실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화 발전을 위해 중요한 것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배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의 정비가 급선무라는 의식이 강해지고 있었다. 마침 그때 같은 생각을 가진 독지가가 시민에게 열린 도서관 만들기를 위해 유산을 남겨 뉴욕 공공도서관이 탄생하게 된다. 그 후 도서관에 기부를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 철강왕 카네기가 거액의 기부를 자처하였고, 뉴욕 공공도서관 분관의 절반 가까이가 카네기의 자금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뉴욕 공공도서관은 운영이나 재정적 측면에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사상적으로도 독자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고, 민주주의나 언론 자유에 대한 의식도 높다.

또한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을 지역에서 육성한다는 원칙을 갖고 아동 서비스에도 힘을 쏟고 있다. 180만 점 이상의 아동용 자료를 소장하고 있고, 어린이용 강좌도 풍부하다. 자료를 구입할 때에도 양보다 질을 고집하고, 전문적인 문헌도 병행하여 수집함으로써 학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교육자 등이 아동서의 연구나 창작에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아동 서비스의 충실함과 지위 향상에 노력한다. 도서관이 중요하니 많이 지어야 한다는 정도의 공감대를 겨우 확보한 우리에게 이 책은 도서관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해준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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