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쇠락하는 도시, 번성하는 도시] ⑬'대구경북의 본보기'日나고야

잘나가던 3대 도시, 광역경제권 흔들…불황탈출 학습사례 될까

나고야(名古屋)는 모범적인 도시다.

대구처럼 일본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이고 경제 성장의 성공 모델인 만큼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도쿄, 오사카 사이에 끼여 있고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데도 홀로 성장을 거듭했다. 인근의 기후현, 미에현과 공동으로 '그레이터 나고야'(Greater Nagoya)라는 이름으로 광역경제권까지 만들었다. 대구·경북이 상생을 위해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불과 2, 3년 만에 모든 것이 변했다. 요즘 나고야는 불황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나고야 경제권의 버팀목이 돼왔던 도요타 자동차가 대규모 리콜사태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나고야 경제권

JR나고야역(驛) 위에 우뚝 솟은 2개 동의 거대한 건물이 있다. 백화점, 사무실, 식당들이 대거 들어서있는 이 'JR 센트럴 타워스'는 나고야의 상징과 같다. 높이가 254m나 돼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고개만 아프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타워 입구에는 유명한 대형백화점인 마쓰자카야(松坂屋)가 입점해 있는데 몰려드는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역시 나고야 역세권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고 무심코 구경을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폐점(閉店)세일이었다. 중년여성 수십 명이 3천엔(한화 4만2천원)에 파는 외제 가방을 먼저 집으려고 온통 난리였다. 헐값(?)에 내놓은 지갑, 액세서리, 가방 매장에만 손님들이 몰려들 뿐 다른 매장은 한산했다. 한 직원은 "불황으로 사람들이 백화점을 많이 찾지 않아 철수하게 됐다"고 했다.

일본의 오랜 경기침체에도 유일하게 성장을 해온 나고야 경제권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도요타 자동차 때문이다. 나고야는 도요타 공장이 몰려 있는 도요타(豊田)시와 자동차로 1시간 거리로 배후도시 역할을 해왔고, 지금까지 도요타의 과실을 따먹어왔다. 그러나 도요타 공장들과 나고야 인근에 산재한 자동차 부품공장들이 리먼쇼크와 리콜사태로 위기에 봉착하면서 직격탄을 그대로 맞고 있다. 자동차 관련 업종이 나고야 제조업 전체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 직원 마츠오카(38) 씨는 "기업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광고비, 접대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이제 흥청망청하던 시절은 완전히 끝났다"고 했다.

나고야 지역은 몇 년 전만 해도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제조업 도시'에 걸맞게 기업들의 구인 광고가 쏟아진 것은 과거의 일이 됐다. 나고야 시청 관계자는 "지난해 기업들의 구인 수요가 2007년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나고야에는 올 들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전출자 수가 전입자 수보다 더 많아졌다. 올 들어 6월 현재 전입자 수는 5만8천998명이고 전출자 수는 6만79명이다. 일자리가 없는 곳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고야시 산업육성과 다다히로 사사키(44) 씨는 "내부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다는 반성이 있었다"면서 "항공우주산업을 미래 주력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예전의 영광 회복할까.

나고야가 한국의 지방경제에 모범이 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 흡수당하는 '빨대효과'를 극복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인근 지자체들과 상생하는 광역경제권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외형상으로는 나고야의 노력이 주효해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해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5년 세계 엑스포를 연데다 2007년 도요타 나고야 본사를 유치할 때만 해도 도쿄와는 경쟁할 수 없지만 전통적인 상업도시인 오사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요타 사태가 터지면서 그 모범 사례의 의미는 퇴색되고 반감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빨대효과'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광역경제권 구축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나고야시에 따르면 몇몇 대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도쿄로의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기업 유치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고속철 신칸센(新幹線)으로 도쿄까지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기업들이 본부·지사를 아예 설치하지 않거나 얼마 후에 철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욱이 차세대 고속철인 '리니어 신칸센'이 2027년 개통돼 40분 거리로 줄어들 경우 독자적인 경제권 존립의 위기감까지 갖고 있다.

2004년부터 추진해온 광역경제권인 '그레이터 나고야'도 시련에 봉착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3개 현에 도요타 관련 기업들이 산재해 있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그래도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포스코를 비롯해 국내외 70개 기업을 유치했고 그 중 50개가 나고야에 자리 잡았다.

냉정하게 말하면 도요타 자동차의 후광에 따른 결과물이었는지,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모범사례인지 다소 헷갈리는 부분이다.

도요타 자동차의 부침에 따라 나고야 경제권도 함께 출렁대고 있는 모습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나고야 지역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 정서, 수도권에 큰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 미뤄볼 때 대구·경북의 상황과 무척 닮아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도시 존립의 위기감을 느끼고 대비를 해온 곳이니 좀 더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나고야 경제권은 올해부터 서서히 회복세를 타고 있다고 하니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모범사례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나고야시청에 가니 한 고위 공무원이 이런 말을 했다. "제조업을 무조건 키워야 하고, 문화산업 분야에서 대구만의 특성을 살리고 알린다면 성공한 도시의 전형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고야도 문화 관광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데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대구와 나고야의 고민은 비슷한 것 같은데 열심히 하다 보면 이뤄내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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