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철에 뜸했던 축제는 9월 중순을 넘기면서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쏟아지고 있다. 민선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뒤로 지역 축제는 폭발적으로 불어나 2006년 말 기준으로 1천176개가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지방 활성화의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축제 때문에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비난한다. 문화부도 2010년의 문화관광축제로 44개를 선정하고 총 71억 8천만 원을 지원했다니까 나머지 천여 개의 축제는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단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역의 축제를 정부가 내려다보듯이 판단해서 '대표 축제' '우수 축제' '예비 축제' 등의 명찰을 붙이는 것이 꼭 옳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여든 관광객의 숫자나 외관상의 번지르르한 무대가 지역 축제의 본질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축제는 말 그대로 축하와 제사의 의미가 합쳐진 것으로, 고대부터 노래와 춤과 제의를 통해 신에 대해 공동체의 존재를 표출하는 일이었다. 공동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이 항상 생기기 마련이다. 피지배자는 보다 더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축제를 통해 지배/피지배라는 이원적 질서에서 벗어나 신과 맞닿는, 세계 너머의 카오스적 상태를 누림으로 해서 공동체의 안전판 역할을 해온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디오니소스 축제나 강릉의 단오제 같은 것도 모두 전통사회에서 질서에 대한 반질서로 만들어진 것이다.
거대한 축제만 다 그런 역할을 한 건 아니다. 소규모의 축제도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내 어린 시절에도, 그러니까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훨씬 전에도 많은 축제가 있었다. 동지나 정월 대보름 등 각종 절기 때면 마을마다 동제가 열렸고 누구나 흔쾌히 어울리는 놀이판이 벌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도 늘 축제가 있었다. 제일 흔한 것이 오일장터의 축제였다. 닷새마다 한 번씩 서는 큰 장터에서 볼거리와 여흥판이 신명 나게 벌어졌던 것이다.
오일장터에서 볼거리를 주도한 쪽은 역시 약장수들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약장수들은 약을 팔러 왔다기보다 시골 사람들에게 재밋거리를 보여주려고 왔던 거 같다. 구매력이 거의 없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앉혀놓고, 기괴한 차력술을 보여주거나 외줄 타기 접시 돌리기 같은 광대 놀음도 했다. 아이들은 잔치국수를 먹고 노인들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약장수의 묘기를 즐기지 않았던가. 우리는 축제와 더불어 살았다고 할 만하다.
이런 축제들은 모두 민간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다. 물론 유명한 강릉 단오제나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같은 것은 관의 도움을 받아 성대하게 열렸겠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이 즐기고 참여한 것은 고을마다 있었던 작은 규모의 자생(自生) 축제들이었고, '약장수 축제'였다.
이런 자생 축제가 가파르게 사라지고 있을 참에,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축제가 다시 번성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럽다. 물론 지자체가 개최하는 축제에는 제의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놀이로 일관되어 있지만, 그 제의의 자리에 각 지역의 특징적인 문화적 요소가 들어가니까, 전통 축제의 현대적 계승이라고 부를 만하다.
전통 축제와 관계 지으려는 이러한 긍정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축제는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아마 대다수의 축제가 관람객 수를 과장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축제의 외형을 중시한다. 개막 행사에는 축사하는 위인들이 왜 그리 많은지, 흡사 단체장과 의원들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무대인 듯하다. 게다가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을 축제 형식에 담기보다 관광객의 숫자를 불리려는 전략에 몰두하는 축제들이 참 많다.
축제의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외부 관광객보다 거주민들이 참여하는 놀이판이 훨씬 더 중요하며 지역 문화와의 뚜렷한 결속이 더 가치가 있다. 이런 본질을 놓치지 않을 때만이 축제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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