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1일), 노인의 날(2), 개천절(3일), 한글날(9일), 경찰의 날(21일), 독도의 날(25일)…. 그럼 7일은?
우리나라에 서양식 귀족이 처음 탄생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10년 10월 7일.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강제로 집어삼킨 한'일 합병이 이뤄지고 한 달 조금 지나서다. 합병과 함께 일제는 '조선귀족령'을 공포했다. 그해 10월 7일 조선총독부에선 조선인 76명이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의 등급이 매겨진 조선 귀족 작위를 받았다. 백작의 이완용'이지용, 자작의 이근택'권중현'박제순 등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비롯한 매국노(賣國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개인 영달을 위해 나라 팔아먹기와 친일(親日) 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 뒤를 이은 친일 행렬도 이어졌다. 20년 뒤 춘원 이광수 같은 인물도 친일에 가세했다. 매국'친일의 결과, 우리 역사의 흐름과 운명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1940년 2월 2일, 춘원 이광수는 매일신보에 '창씨와 나'라는 글을 실었다. "내가 향산(香山)이라고 씨를 창설하고 광랑(光郞)이라고 일본적인 이름으로 고친 동기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 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이 좀 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뒤에도 '나의 고백'이란 글을 통해 "나는 민족을 위하여 살고 민족을 위하다가 죽은 이광수가 되기에 부끄럼이 없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광수나 친일 매국노들이 영원히 망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었던 일본 때문에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리고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어야 했다. 제 민족의 영혼을 팔아 영달하고, 남의 나라 왕을 믿고 허세를 부리며 부귀를 누렸던 인물들 '덕'에 우리는 광복 60년이 넘도록 잘록 허리 잘린 한반도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또 허리 북쪽에선 세계사에 유례없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제가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매국'친일 결과가 아니던가. 수많은 기념일로 넘치는 10월. 국치 100년을 맞아 매국'친일파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할 기념일이라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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