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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야구' 로는 성이 덜차 정식으로 팀 꾸렸죠" 청소년 야구리그

대구 북구 칠성동 오페라하우스 옆 야구장에서 청소년야구팀 카디널스와 첼린져 선수들이 경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대구 북구 칠성동 오페라하우스 옆 야구장에서 청소년야구팀 카디널스와 첼린져 선수들이 경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프로야구가 출범 28년 만에 누적 관중 1억명을 돌파했다. 올 시즌 532경기 누적 관중도 592만8천626명으로 역대 최다 관중을 동원했다. 국내 프로 스포츠 중 야구는 관중이 가장 많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굳혔다. 최근에는 사회인 야구 붐까지 일면서 야구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성인들의 이야기다. 야구를 좋아하는 중·고교 청소년들에게는 여전히 '운동장에서 즐기는 스포츠'가 아닌 '보는 스포츠'에 머물러 있다. 글러브와 방망이 등 장비구입 비용이 청소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만만치 않다. 야구경기를 하기 위한 최소인원을 구성하기도 쉽지 않고, 상대팀을 구하기도 어렵다. 팀을 만들어도 유니폼에다 포수미트 등 장비를 구입해야하는데다 유지비용도 발목을 잡는다. 또 야구를 할 만한 장소 찾기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선수가 아닌 청소년들이 야구를 취미로 갖기에는 제약이 많다. 그래서 학교 운동장에서 몇몇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거나 엉성한 야구 시합을 하는 게 고작이다. 초등학교 때는 리틀 야구의 길이 열려있지만 중·고교로 진학하면 더 이상은 야구를 할 수 없다. 지난달 18일 '청소년리그'에서 야구를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이들을 보면서 동네 골목에서 머물러 있는 청소년 야구가 건전한 취미로 정착할 수 있는 길을 엿볼 수 있었다.

◆청소년리그 대구서 전국 첫 출범

대구 북구 칠성동 오페라하우스 옆 야구장에서 청소년야구단 '카디널스'와 '첼린져'의 플레이오프가 열렸다. 유니폼과 장비를 제대로 갖춘 모습이 여느 사회인야구 팀과 다르지 않다. 수비며 타순의 짜임새가 야구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학생치고는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팀 모두 2, 3년 전 야구를 좋아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만든 순수 청소년야구단.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 회원을 모집했고, 소문을 듣고 찾아와 야구를 한 학생들도 있었다. 팀당 20~30명씩 회원을 거느리고 있고, 각종 장비에 포지션까지 지정된 걸 보니 반짝 모였다 없어지는 야구팀들과는 달랐다.

예전에는 수소문해 비슷한 청소년 팀과 시합을 가져왔지만 올해부터는 매일신문사와 대구경북사회인야구연합회(TKABO)가 공동으로 마련한 '청소년리그'에 가입해 정식으로 야구를 즐기고 있다.

최종문 TKABO 사무국장은 "청소년리그는 학생들끼리 놀이삼아 해오던 야구경기를 일정한 틀을 갖춰 제대로 야구경기를 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으로, 대구에서 전국 최초로 시도되고 있다"고 했다.

리그에 가입하면서 학생들은 야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사무국에서 경기장을 구해주고 심판, 기록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덕분에 야구를 하기 위해 빈 공터를 찾거나 경기 중 애매한 상황을 두고 다툴 일도 없어졌다. 야구공이 날아가 차량을 파손하거나 유리창을 깨는 일도 없어졌다.

성인 사회인야구팀이 이런 혜택을 누리려면 연간 200만원 내외의 가입금을 내야하지만, 청소년 야구보급차원에서 사무국은 학생들에게는 팀당 연간 10만원의 가입비만 받고 있다. 이 비용 역시 가입 후 경기불참 등 무책임한 행위를 막기 위한 목적이지 수익 차원은 아니다. 구장 사용료며 심판과 기록원에다 경기에 사용하는 야구공까지 제공해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무료나 마찬가지다.

◆야구 "스트레스 해소, 공부에 도움되죠"

청소년리그에는 대구경북의 중·고교생들이 만든 4개 팀이 가입해 리그전을 치르고 있다. 이날 경기는 리그 2위 첼린져와 3위 카디널스의 플레이오프. 이 경기의 승자는 1위 팀 빈디와 '왕중왕'을 가린다. 두 팀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손희웅(경북고 2년) 군은 "야구는 상대와 벌이는 대결이지만 협력수비, 타격, 주루 등 기본기를 갖춰야해 승부 못지않게 배워야 할 게 많다"며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생기게 돼 더욱 재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청소년야구단 대부분이 중1~고2까지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보니 야구 글러브를 들고 운동장에 나가는 데는 눈치를 봐야한다. 고강혁(용산중 2년) 군은 "야구 때문에 공부하는 시간 빼앗긴다고 처음에는 부모님 반대가 심했다"며 "하지만 야구를 하기 위해 평소에 더 열심히 공부하니 야구가 공부에 지장을 주는 건 절대 아니다"고 했다.

학생들은 2주에 1번 정도 3, 4시간씩 하는 시합이나 가끔 주말에 하는 연습이 결코 공부의 방해요소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운동장을 마음껏 달리며 건강을 챙길 수 있고, 스트레스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어 학업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며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건전하다는 게 학생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더욱이 야구를 하면서 얻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야구가 단체운동이기 때문에 일단 20명 정도는 있어야 한 팀이 성립되고, 단기간에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특징 때문에 꾸준한 노력을 유도한다. 좋은 플레이를 했을 때는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부족한 부분은 고쳐주면서 팀원끼리 한 곳에 모여 같이 성장해가는 기분은 뭔가 이뤄간다는 성취감을 준다.

무엇보다 큼지막한 타구를 날리거나,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김형석(덕원고 2년) 군은 "날아오는 공을 방망이로 제대로 때려냈을 때의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김 군은 리그에서 홈런 2개를 쳤다고 자랑했다.

정경훈(구미전자공고 1년) 군은 "치고 달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고 했다.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업 정보 교류도 이뤄진다. 장연수 군은 "여러 학교 학생들이 함께 운동을 하다 보니 각자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나 시험정보 등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경기내용을 기록했다 장·단점을 분석하고, 시합이 있을 때는 상대팀 전력 분석도 빠뜨리지 않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하나의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은 "더 많은 학생이 야구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소년리그는 리틀 야구 후 끊겨버린 학생야구를 대학 동아리나, 사회인야구로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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