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고층 건물 재난 대비 매뉴얼 만들자

부산 해운대 38층 주거용 오피스텔에서 난 큰불은 우리 고층 건물들이 화재에 무방비 상태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부가 다쳤으나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 화재는 고층 건물에 대한 총체적 소방 점검과 함께 보완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과 엄중한 경고를 남겼다.

대구의 경우 30층 이상 주상복합아파트는 모두 44개 동에 이른다. 그러나 대구소방본부 보유 고가사다리차가 올라가는 높이는 17층(52m)이 한계다. 고층으로 갈수록 바람이 거세 실제 효율적인 진화가 가능한 높이는 이보다 훨씬 낮다. 게다가 대구 지역 주상복합아파트의 옥상은 인명 구조용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헬리포트 시설이 미비하다. 44개 동 중 19개 동이 헬리포트를 갖추고 있으나 이 중 3곳은 소형 헬기조차 착륙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고층 건물의 방재 설비는 이처럼 미흡하지만 건축 및 소방 관련 법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현행 건축법은 50층 이상이거나 200m 이상 초고층 건물에만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의 15~49층 건물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반면 중국과 홍콩의 경우 15층과 20층마다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토록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 불연재 사용 규정,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 등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 고층 오피스텔 화재는 대구지하철 참사 등 수많은 대형 재난을 겪고도 우리 사회가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을 고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내세우지만 재난 대비책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인 것이다. 화재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대피 훈련을 정례화하는 한편 초고층 건물의 안전기준도 보다 강화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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