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를 당하자 퇴계의 후손인 안동의 향산 이만도는 24일간의 단식 끝에 100년 전 10월 10일 장렬하게 순국했다. 향산이 자정순국(自靖殉國)하자 그의 집안 조카와 제자를 비롯한 안동'봉화'영양 등 안동문화권 선비들의 자결이 잇따랐다.
이른바 단식과 순국의 '베르테르 효과'를 낳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향산의 후손과 안동인들이 독립운동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지난달 안동에서 선보인 뮤지컬 '락'도 바로 향산과 그의 며느리 김락의 숭고한 항일 투쟁사를 담은 것이다.
명문가의 안주인으로 시아버지의 순국에 이은 남편과 두 아들 및 두 사위의 항일운동은 물론 친정 식구들의 만주 망명을 온몸으로 지켜봐야 했던 여인. 김락은 자신 또한 3'1운동에 앞장섰다가 일경의 고문으로 실명을 했는데, 이 모두가 향산의 자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실 '베르테르 효과'란 독일의 문호인 괴테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간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200여 년 전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실연의 아픔을 자살로 마감한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를 모방했던 도미노 현상을 두고 지어낸 말인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사회적인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나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의 죽음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말하는데, 그러나 자결과 자살은 분명히 다르다. 사전에서도 자결은 '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자살은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살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자결은 새로운 시작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모든 것이 잊혀지기를 바란다면, 자결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져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원한다. 향산의 장렬한 죽음은 당연히 자결이다.
최근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이를 모방하는 소위 베르테르 효과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8일 오후 안동에서 열리는 향산 이만도 선생 자정순국 100주년 추념식을 앞두고 자결과 자살의 의미를 새삼 떠올려본다.
뮤지컬 '락'의 마지막 절규가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였다. 망국의 한을 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우국지사들이 연예인의 자살과 베르테르 효과를 무슨 대수인 양 떠들어대는 오늘 우리들에게 꾸짖어 물을 것 같다. '너희가 삶을 아느냐.'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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