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미있는 한방이야기] 추어탕과 제피

추어탕의 향신료 제피…어류 독 해독하고 비린맛 없애는 효능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요즘은 일교차가 심해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성큼 다가온 가을, 어느덧 뜨끈한 국물요리를 찾고 싶은 계절이다. 이때 입맛은 물론 몸과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가을 보양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추어탕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꾸라지는 한자로 추어(鰍魚)인데, 겨우내 동면을 하기 위해 많은 영양분을 저장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는 가을에 제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가을의 쌀쌀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음식인 추어탕은 예로부터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양식기술의 발달로 계절에 관계없이 추어탕을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가을철에 먹는 추어탕이 제격이 아닐까 여겨진다.

어릴 적에는 벼를 수확하기 전에 미리 논 가장자리에 도랑을 처서 논을 말려야 한다. 이때 덤으로 도랑을 치고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동의보감에는 '추어(鰍魚)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으며, 속을 따뜻하게 하여 비위를 보하며, 설사를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의학적으로 추어는 비위를 보하고 속을 데워주고 원기를 돋워 주며 설사를 그치게 하고 주독을 풀어주는 작용이 있다. 또한 이뇨작용이 있어 평소 얼굴이나 손발이 잘 붓는 경우에도 일정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세포조직 중의 수분을 유지하게 하는 작용이 있어 노인성 피부소양증에도 효과가 있다.

추어는 비타민 A와 D 및 칼슘을 함유하고 있어 야맹증, 소아의 성장 발육이나 성인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체질적으로 추어는 음체질에게 적합하며 특히 소음인에게 좋다.

그리고 경상도에서 흔히 추어탕에 향신료로 넣어 먹는 것을 제피 가루라 한다. 이는 운향과에 속한 낙엽관목인 초피나무와 산초나무의 열매로, 8~10월 성숙한 열매를 채취하여 파쇄한 후 검은색 종자는 버리고 열매의 껍질만 취하여 볶아서 기름성분을 제거한 후 식용이나 한약재로 사용한다. 이는 중국의 쓰촨성(四川省)인 옛 촉(蜀)나라 지역에서 생산되며, 이러한 연유로 한약재명으로 천초(川椒), 촉초(蜀椒)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의학적으로 촉초는 성질이 따뜻하고 매운 맛이 나며, 독(毒)이 있다. 즉 성미가 신온(辛溫)해서 신체의 찬 기운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어 위와 장을 따뜻하게 하여 소화불량, 구토, 트림, 설사, 복통 등을 치료하는 방향성 건위제로 쓰인다. 또한 사지의 관절이 시리고 아픈 경우에도 사용한다. 그리고 매운 성질이 있으면서 구충 작용이 있어 예로부터 충(蟲)으로 인한 복통에 다용되었으며 음부소양증, 치질, 옴 등에도 달인 물로 세척하는 외용약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한 어류의 독을 해독하고 비린 맛을 없애는 효능이 있는데 추어탕이나 매운탕 등에 촉초를 넣어 먹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촉초 가루에는 정유(식물의 꽃'꽃봉오리'잎'줄기'뿌리 등에서 얻는 향기가 강한 휘발성의 기름)가 7% 정도 함유되어 있다. 그 중 게라니올(geraniol)은 황색포도상구균, 피부진균, 폐렴구균, 이질균 등의 억제작용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한 리모넨(limonene)은 염증 억제 작용과 여드름이나 아토피 등 피부질환의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방향제로도 이용된다. 그리고 매운맛의 주성분인 산쇼올(sanshol)에는 살균작용과 구충효과도 있으며, 국소마취 및 진통작용이 있어 미각과 후각을 무디게 하여 어류의 비린내를 없애준다.

여성들은 유방에 염증이 생기거나 타박상을 입었을때 민간요법으로 촉초의 열매나 잎을 말려 가루로 내어 밀가루와 반죽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촉초 열매나 잎 40g을 달인 물로 씻거나 목욕을 하면 가벼운 음부소양증, 치질, 피부질환 및 사지관절통에 효과가 있다.

촉초의 잎도 최근에는 고추장 절임으로 많이 이용되며, 사찰에서는 미성숙한 열매를 채취하여 간장을 담그는데, 입 안에서 열매가 터질 때마다 독특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이 촉초는 약재뿐만 아니라 식재료로 특히 경상도지방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중국요리에도 많이 들어가는 향신료 가운데 하나이며, 국내에서는 추어탕, 매운탕과 김치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촉초는 매운 맛이 강하고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어 과량 또는 장기간 복용하면 위염을 유발할 수 있으며,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나 임신부는 식용과 약용으로 먹을 때 주의해야 한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도움말:한상원 대구시 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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