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제철인 모과를 처음 보는 사람은 네 번 놀란다는 말이 있다. 예쁜 나무에 너무 못생긴 열매가 맺혀서 놀라고, 못생겼지만 달콤한 향에 다시 놀라고, 또 향기는 좋은데 맛이 없기 때문에 또 놀란다. 마지막 놀람은 맛은 고약하지만 좋은 한약재라는 걸 알게 될 때다.
이윤희(56) IBK기업은행 부행장도 모과 같은 사람이다. "사실 제 어릴 때 이름이 '모개'였습니다. 모과의 경상도 사투리이죠. 제가 못생기기도 했지만 위로 형님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저는 오래 살아라는 뜻에서 부모님이 그렇게 부르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고향 친구들은 절 모개로 부릅니다."
이름뿐만이 아니다. 170㎝가 채 안 되는 단신이지만 영업력만큼은 은행가에 정평이 나있다. 입행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지점장에 올랐고, 재임 부행장 12명 중 유일하게 지역본부장을 두 번 역임할 정도로 현장에 강하다.
"첫 지점장을 10년 전 속초에서 맡았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폐점 직전일 정도로 영업이 어려운 지점이었는데 한 번 도전해보자 싶어 자원했죠. 낮에는 고성·양양·인제 등 인근 지역의 중소기업과 군부대·사찰을 찾아 홍보했고 밤에는 속초 시내 식당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설악산 봉정암도 영업 때문에 여러 번 올랐죠. 열심히 뛴 덕분에 속초지점은 최우량지점으로 거듭났고 저도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능력을 인정 받은 그는 2003년 서울 서여의도지점장으로 옮긴 뒤에도 '신화'를 이어갔다. 대한민국 최고 금융중심가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업고객들을 공략, 6천억원대였던 수신(受信) 규모를 1조원대로 늘렸다. "수신 1조원 돌파는 저희 은행 서울시내 지점 가운데 처음이었습니다. 기업·기관마다 다른 자금운용 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고객의 니즈(needs)를 맞춰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발품을 파는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영업에도 전략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는 지금 신탁연금본부를 맡고 있다. IBK기업은행의 7월 말 기준 퇴직연금 시장점유율은 5.8%로 총 53개 사업자 중 5위다. 은행권 중에서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퇴직연금제도의 확산은 정말 중요한 정책적 과제입니다. 금리 경쟁이 막혀 있는 만큼 저희 은행은 완벽한 퇴직연금 운영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비가격경쟁으로 특화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가입 고객에 대한 혜택도 풍성하다. 대출금리를 우대해 주고, 송금 수수료 같은 거래 수수료를 면제해 준다. 외화를 바꿔 갈 때 환율을 우대하고, IBK 사이버 문화센터 교양강좌를 무료로 제공한다. 전국 영업점에 퇴직연금 전문가를 배치해 퇴직연금 도입 효과 및 제반 절차 상담을 지원하고, 자산 배분 및 투자전략 수립 등의 자산 리스크 관리도 해준다.
이 부행장은 요즘 매월 한 번 이상 대구를 찾는다. 그가 대구경북본부와 강동본부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동본부는 서울 시내 동쪽 지역과 경기도 일부, 강원도 전체를 맡고 있다. "영업점 회의도 주재하고 기업도 방문하는데 대구경북의 경기 회복이 느려 안타깝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승하는 듯하다가 요즘 다시 주춤거리고 있거든요. 정부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선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저희 은행 본연의 임무가 중소기업에 대한 안정적 자금 지원인 만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41개 점포가 있는 대구경북본부의 경우 여수신 규모·고객 수는 지난해 말보다 크게 늘었지만 수신액보다 여신액이 많은 실정이다.
국내 굴지의 은행을 이끌고 있는 그이지만 은행가 대신 대학교수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은사님이 강단에 설 것을 권유하셔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친구들과 우연히 지원서를 냈던 기업은행에서 합격 통보가 오더군요. 회사에서 배려해준 덕분에 대학원도 무사히 마쳤습니다만 공부에 대한 미련도 없진 않습니다. 박사과정 진학은 힘들겠지만 책은 항상 곁에 두고 있습니다."
영천 출신으로 영천 동부초교·영천중·영천고를 나온 그는 건국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