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가을여행

부석사 은행나무길 걸으며 '청춘의 그날' 다시 떠올려볼까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권경희(대구 수성구 황금1동)

다음 주 글감은 '배추'입니다

♥ 축제장 잘못 찾아가 낭패

어쩌다 보니 안동 탈춤축제 무료 공연권을 두 장 얻을 수 있었다. 마누라랑 둘이서 가기로 하고 10월 1일,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금요일 오후부터 나는 15년 된 고물차를 청소하고 엔진을 점검했고 우리 마누라는 한 푼이라도 아낀답시고 유부초밥에 과일, 음료수, 컵라면까지 챙겼다. 1년에 한두 번 가는 여행에 마치 초등학생 소풍가는 것처럼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밤늦도록 야단법석을 떨었다. 드디어 아침 일찍 안동 하회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하회마을까지 들어가는데 조금 짜증이 난다. 주차비에 입장료에 다른 축제는 무료로 제공해주는 셔틀버스 요금까지.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고 탈공연장에 도착해보니 아, 이럴 수가! 한순간 허탈감과 후회스러움이 밀려왔다. 강변에 달랑 세트장 하나 설치해놓고 공연을 한다고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입장료에 고속도로 통행료에 기름값까지 쏟아붓고 온 걸 생각하니 화가 났다. 탈춤 구경은 뒷전으로 하고 싸온 음식을 실컷 먹고 하회마을 한 바퀴 돌고 그냥 대구로 내려와 버렸다.

근데 너무 억울하고 분하기도 해서 안동 탈춤축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온갖 불평불만을 다 적고 보니 좀 이상했다. 분명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 속 축제장과 우리가 다녀온 공연장이 다른 것이 아닌가! 그래서 꼼꼼히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축제장은 안동 시내에 있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축제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가서 내가 적은 불평불만을 지워야했다. 참으로 무지한 우리들 때문에 우리들 손과 발이 참으로 고생한 하루였다. 허허허.

유호중(대구)

♥올라 온 수고 보답하는 부석사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올여름 그렇게 혹독하게 덥더니만 그래도 기어이 가을은 오고야 만다. 햇살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바람에 쓸려가는 햇살을 보면 영주 부석사가 늘 떠오른다. 그곳은 은행나무길이 유명하다. 가을을 누구보다 더 환한 빛으로 기억하고 싶다면 영주 부석사를 추천한다. 지금이야 TV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된 탓에 전국적 명소로 떠올랐지만 20년 전만 해도 호젓한 시골길에 불과했다.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알음알음으로 찾아가는 '나만의 명소'였던 셈이다.

대학 시절,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 몇 명은 계절이 바뀌면 '어디로 가볼까' 궁리하기 바빴다. 새내기 첫 가을, 친구의 추천으로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처음 그곳에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의 감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온통 노랗게 빛나던 그 길, 그래서 우리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그 길을 말이다. 평탄해보이지만 은근히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의 그 절경은 또 어떠한가. 올라온 수고를 보답해주기라도 하듯 첩첩이 둘러싼 산과 노란 은행잎은 말 그대로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청춘에 겨워 비틀댔다. 그날의 그 부석사 은행 길은 우리의 어깨를 다독여줬다. 그때 그 길을 함께 가던 이들 중 한둘은 이미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났고, 나머지는 서울로, 미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지내고 있다. 다시 한 번 불혹을 넘긴 우리들이 함께 그 길을 걷고 싶다. 이번에도 우리를 위로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이영(대구 서구 내당동)

♥ 코스모스 밭서 포즈 취하다…

남들은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우리는 그 비용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 둘러보자고 하여 결혼 이듬해 가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야 거창할 건 없지만 남편 어릴 적 맘껏 뛰어 놀던 고향으로 길을 나섰다. 낙동강을 지나니 강변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차를 세우고 "오빠, 나 잡아봐라~" 하고 까불거리며 코스모스 밭으로 뛰어 들어갔다. 흰색, 연분홍, 진분홍 코스모스가 요염하게 허리를 한들거리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카메라를 들고 뒤따라오는 남편을 보고 멋진 포즈를 취하기 위해 폼을 잡다가 그만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남편이 코스모스 꽃 한 가닥 쥐고 서 보라고 재촉하기에 일어서 엉덩이를 털려고 하니 뭔가 미끌미끌한 게 손바닥에 묻어 나왔다. 세상에 누런 똥 덩어리가 뭉개져 있었다. 냄새로 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벌도 없는데 어떡하지. 나는 울상이 되어 코스모스 밭에서 나와 차 안에 있는 티슈로 닦고 또 닦아냈다.

"까불어 댈 때 알아봤다. 알아봤어." 경상도 남자 아니랄까봐 그걸 위로라고 하는 말인지. 차 시트에 냄새가 밸까봐 야외용 돗자리를 깔고 앉았으나 자꾸만 그 누런, 누군가 시원하게 누고 갔을 그게 생각이 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행길에 군것질할 음식이랑 카메라 삼각대, 사진 찍을 때 필요한 소품까지 챙겨서 떠났는데 준비한 것들이 아까워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마침 시골 5일장날이었다. 가을 시장은 풍성했다. 청바지 대용으로 입을 만한 것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고 다만, 시골 할머니들이 즐겨 입는 알록달록한 인견 '몸빼' 바지뿐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젊어 보이고 고상한 꽃무늬가 있는 것을 골라 입고 고향에 도착해서 준비해 간 모자, 선글라스 등 소품으로 멋을 내고 추억을 남겼다. 요즘 그 사진을 들여다보니 1960년대 3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 웃음이 난다.

문삼숙(대구 달서구 용산동)

♥ "가족 걱정되지만 설악산으로~"

쌀쌀하니 가을이 오는구나 했던 지난 주말 옆자리에 가방 하나를 싣고 팔공산으로 향했다. 가로수엔 제법 가을이 조금씩 내려오고 먼 산 언저리도 곱게 오색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에 심취되기도 전에 라디오엔 가을 노래가 잔잔하게 흘러나와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진짜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고 이럴 때 옆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홀가분하게 떠났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태 아이들 핑계로 장거리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이젠 아이들도 라면 정도 끓여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마음먹으면 안 될 것도 없다. 직원들하고 이름 모를 산을 오르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했다. 팔공산 언저리는 단풍이 곱게 물들려고 하는데 거긴 어때요? 여긴 힘들게 산 오른다고 길밖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전화기로 새어나오는 숨소리로 봐서는 더 이상 긴 대화가 불가능한 목소리였다.

여행 입 밖에도 꺼내보지 못하고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면서 소꿉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야 벌써 단풍이 물들고 있다. 우리 단풍구경 갈래. 친구는 바로 좋다고 한다. 어디가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설악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럼 설악산으로 기차 타고 여행 떠나는 거다. 서로 다짐하고 전화를 끓었다. 그런데 떠날 생각을 하니 가족이 걱정이다. 주부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떠나기로 했다. 설악산으로~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