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新노총각 도시… 취업보다 어려운 결혼

여성없는 중공업도시 회사서 맞선 주선 등 이벤트

포항 현대제철소에 근무하는 Y(30)씨는 올해로 입사한 지 2년이 됐다. 입사 후 지인들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20차례 이상 했지만 석 달 이상 교제한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Y씨는 "고향이 서울인데 서울 여성을 만나면 먼 거리 때문에 교제를 지속하기 힘들었다. 우리 회사에는 여직원이 거의 없어 사내 커플이 될 가능성도 제로다"며 "취업보다 결혼이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경북 포항과 경남 거제도 등 중공업 지역에 직장을 둔 총각들은 혼기(婚期)를 놓칠까봐 내심 불안하다. 과거 농촌 지역에 젊은 여성이 없어 결혼을 못한 노총각들이 넘쳐난 것처럼 중공업 지역인 포항과 거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공업 지역에 '신(新) 노총각'들이 넘쳐나고 있다. 거제와 포항 등 '남자의 도시'로 변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미혼자들 중에는 아예 연애를 단념하고 묵묵히 일에만 전념하는 이들도 있다.

거제 삼성화재 영업팀에서 일하는 강정호(28) 씨는 "거제도는 여자가 아주 귀한 곳이라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날 확률은 낮다"며 "어차피 순환근무라 3년 뒤 서울 본사로 돌아가면 결혼 상대를 본격적으로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포항과 거제에서 결혼을 하려면 주말부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K(30) 씨는 5월 서울의 한 제약업체에 다니는 아내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서울에 전셋집을 잡아놓고 K씨가 주말마다 4시간 30분씩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간다. K씨는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고 거제에서 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우리 팀에만 주말부부가 5명이나 있다"고 했다.

일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거제에 있는 기업은 취업이 돼도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김형석(27·경북대 4학년) 씨는 "취업만큼 중요한 게 결혼 아니냐"며 "대구에 있는 여자친구와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거제에서 일하는 것보다 연봉이 조금 낮더라도 대구 인근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대표철강기업인 포스코에는 남성 직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작년 기준으로 전체 직원 1만6천400명 중에서 남성이 1만6천 명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남성 직원 '장가 보내기'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직원들의 혼사(婚事)에 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달 2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남성 직원들의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이벤트로 '단체미팅'을 주선했다. 25~33세의 포스코 미혼 남성 엔지니어와 포스코와 포스코패밀리사 직원, 교사, 공무원, 은행원, 약사 등 남녀 46쌍이 미팅에 참가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홍보팀 관계자는 "포항제철소의 경우 수도권 출신의 미혼 남성 엔지니어들이 많은데 이들이 포항에 정착하지 않고 자꾸 떠나려고 한다"며 "이번 이벤트는 결혼 후 직원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돕기 위해 마련했다"고 전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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