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이 근무하는 어느 관청이 있다. 이곳에 한 건의 민원이 접수된다. 먼저 E는 그 문서가 F 소관이라는 것을 결정한다. F는 답신 초안을 C에게 가져가고, C는 그것을 수정한 후 D와 협의한다. D는 G에게 그것을 처리하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G는 서류를 H에게 넘겨주고 휴가를 간다. H는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D의 결재를 받아 C에게 보낸다. C는 그것을 참작하여 초안을 수정, 개정된 답신을 보스인 A에게 가져간다. 그는 문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결재해도 무방하다. 그러면 도대체 A는 무엇을 할까. 그는 그런 일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많다고 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파킨슨(Parkinson)이 공무원의 관료주의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다. 그는 1914년에서 1928년 사이 15년간 영국 해군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함정 수는 64%가 줄었고 장병 수는 무려 31%나 감소했는데도 해군 본부의 관리자 수는 거꾸로 78%나 늘어난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파킨슨 법칙'이 탄생했다. 즉 '공무원의 수는 일의 유무나 경중에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발표한 것이다.
얼마 전 초선 대구시의원이 "지역 현안에 대해 뭔가 아이디어를 내 추진하자고 제시하면 대부분의 공무원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더라"고 흥분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핑계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고 규정이 없어 추진이 힘들다는 것이다. 또 전례가 없는데다 다른 지자체에서 하지 않기 때문에 검토를 해봐야 한다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시 공무원의 마지막 반응은 "얼마 전 담당자가 바뀌어 아직 업무 파악이 안 됐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것이었다며 "무한 경쟁 시대에서 언제까지 업무 파악만 하다 시간을 허비할 것인지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구시 공무원을 '5무(無) 공무원'에 비유했다.
사실 '5무(無) 타령'에 대해서는 지난해 초 김관용 경북지사가 먼저 지적했다. 공무원들에게 "예산 없다, 인력 없다, 규정 없다. 전례 없다, 담당자 없다" 등 5가지 핑계로 안주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어디 하루아침에 개선될 사안인가.
애꿎은 공무원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가슴에 '5무 타파' 정신을 품고 살아야 한다. 이런 비판 분위기가 바로 지역 발전의 자양분이 아니겠는가.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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