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눔의 문화, 공정사회의 중심에 서다

기업, 단체 기부가 주류 개인 비중 23%…대구는 기업 비중 낮아

나눔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 척도다. 자신의 부를 이웃과 나누는 기부는 계층간 벽을 허물고 함께 사는 사회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된다. 5일 원로영화배우 신영균 씨는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전재산 500억원을 사회에 쾌척해 화제가 됐다.
나눔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 척도다. 자신의 부를 이웃과 나누는 기부는 계층간 벽을 허물고 함께 사는 사회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된다. 5일 원로영화배우 신영균 씨는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전재산 500억원을 사회에 쾌척해 화제가 됐다.

"우리는 사회와 국가에 큰 빚을 졌다.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우리에게 기회를 줬고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했다. 다른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번 돈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빛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에너지트레이딩회사 '센타우루스 에너지'의 존 아놀드 회장 부부가 미국 억만장자들이 참여한 기부서약 홈페이지에 올린 서약문의 일부다.

나눔(기부)이 공정사회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고 있다. 나눔이 우리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게 된 것은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미국 부자들이 펼친 기부 릴레이 영향이 자못 크다. 천문학적인 돈을 선뜻 내놓는 미국 갑부들의 기부 러시는 우리의 나눔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와 지역의 나눔 문화의 현주소를 들여다 봤다.

◆우리나라

나눔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의 경우 개인 기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업이나 단체가 기부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5일 원로배우 신영균 씨가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500억원이라는 전재산을 쾌척한 것은 개인 기부로는 극히 드문 사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해 3천300억여원의 기부금 가운데 개인 기부금이 차지한 비중은 23.4%에 불과한 반면 기업이나 사회·종교단체 기부금 비중은 69.6%를 차지했다.

외국에서는 기업 회장도 개인 자산을 출연해 개인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투자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 테드 터너 CNN 창업자, 존 모리지 시스코시스템스 전 회장, 피터 피터슨 블랙스톤 공동창업자 등이 모두 개인 이름으로 기부 릴레이에 참여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 기부 소식은 종종 들려 오지만 오너들이 자신의 재산을 기부했다는 소식은 접하기 어렵다. 심지어 기업이나 개인 비리에 대한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기부를 하는 사례도 있다. 자신의 재산은 거의 축내지 않으면서 회사 돈을 이용해 생색내기용 기부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국무회의에서 "기업의 진정한 기부는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며 기업 소유주들의 나눔 문화 동참을 촉구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기부 형태에서도 선진국과 한국은 반대로 달린다. 선진국은 기부가 생활의 일부분으로 정착화 돼 있다. 매월 또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기부를 하는 상시 기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부는 불우이웃돕기나 수재의연금 같이 특별한 시기나 이슈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행해지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북지회에 따르면 연간 기부액의 70%가 연말연시에 모금될 만큼 특정 시기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구경북

우리나라 내에서는 지역별 나눔 문화가 조금씩 다르다. 대구의 나눔 문화 특징 중 하나는 사회·종교단체 기부 비중이 매우 높은 반면 기업 기부의 비중은 낮다는 것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회·종교단체 기부 비중은 36.6%로 전국 평균인 10.6%를 3배 이상 상회 했다. 반면 기업 기부 비중은 35.3%로 전국 비중인 59%에 훨씬 못미쳤다. 특히 기업 기부 비중이 2007년 39.1%에서 2008년 36.3%로 해마다 감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구의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장기간 지속된 경기 침체로 기부를 할 만한 기업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철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회 사무처장은 "대구지역 기업들의 기부 여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과거 건설업체들이 기업 기부를 주도했지만 지금은 기부를 할 수 있는 건설업체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경북은 개인 기부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북지회의 경우 지난해 개인 기부 비중이 47.9%를 차지했다. 이는 전국 평균(23.4%)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도농 복합지역인 경북은 시 보다는 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기부 의지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병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북지회 자원개발팀장은 "1인당 기부액을 보면 군 단위가 시 단위의 두 배 정도 된다. 어려운 이웃과 정을 나누려는 시골 인심이 살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인 기부 비중이 높은 것도 농촌 인심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액 개인 기부자가 많지 않는 것은 대구경북의 공통 현상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8년부터 운영하는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는 7월 현재 35명이 가입한 상태. 하지만 대구의 경우 아직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기부자가 한 명도 없다. 경북은 이상춘 현대강업 대표 1명을 확보해 체면치레를 했다.

◆이젠, 나누자

영국 자선·구호재단 CAF와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발표한 '2010 세계 기부 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81위를 차지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 점을 감안하면 부끄러운 순위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나눔 문화의 허약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잠재적 기부자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병삼 팀장은 "왜 기부를 해야 하는지 어릴때부터 교육을 해야 한다. 기부에 대한 철학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도 기부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원 봉사에 대한 교육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자원 봉사가 활성화 된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눔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철호 사무처장은 "선진국의 부자들이 존경 받는 이유는 그들이 많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자들도 기부 활동이 사회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선진국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부자들의 기부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기부자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내 기부를 더욱 북돋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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