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인질들(이영광)

십년을 쓰던 의자를 내다버리는 아침

사람도 버려온 내가 의자 따위를 못 버릴 리는 없으니까

의자를 들고 나가 놓아준다

의자도 버리는 내가,

십년을 의자에 앉아 생각만 했던 사람을

버리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사람도 안고 나가 놓아준다

이것은 너른 바깥에 조건 없이 새 집을 마련해 주는 일

개인 봄날,

이제 그만 투항하여

光明 찾자는 일

늙은 의자는 초록 언덕 아래로 실려 가고

사람 얼굴이 아닌 것만 같던

고운 얼굴 風樂처럼 공중을 날아간다

잘 가라, 탈출이라곤 모르던 인질들

사정을 말하자면,

내게는 겨우 새 의자가 하나 생겼을 뿐이나

새 의자가 하나 생겼다는 건, 마음자리를 새로 앉힐 데가 생겼다는 것이다. 십 년을 그리워한 사람의 추억마저도 십 년 쓰던 의자를 버리는 일에 기대어 마침내 "놓아주"기로 한다. 이를테면 그것들은, 하나같이 "탈출이라곤 모르던 인질들"이었으므로. 그러하니, 십 년을 걸터앉아 낡아빠진 의자나, 그리움이란 허울로 십 년 세월 내 마음에 인질로 억울하게 잡혀 있던 그대여, 나는 "이제 그만 투항하여/ 光明" 찾는 일에 나서고자 하니, "너른 바깥에 조건 없이 새 집을 마련해" 자유롭게 잘들 살지어다.

십 년 세월, 내 마음이란 인질범에게 볼모로 갇혀 찌들대로 찌든 그대여, 그 형용이 핍진하여 "사람 얼굴이 아닌 것만 같던" 몰골이더니, 원래는 그리 고운 얼굴이었구나…… 이제 너른 바깥으로 나가 "風樂처럼 공중을 날아"가며 잘 가거라. 도무지 탈출이라곤 모르던, 착해 빠진 내 사랑스런 인질이었던, 그대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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