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한글날과 노벨 문학상

한글날 즈음해서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됐다. 그리고 혹시나 기대했던 한국 작가는 역시나 탈락했다. 세계 최고의 문자라는 한글을 지닌 한국이 단 한 번도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을 단지 그동안 허약했던 국력 탓으로만 돌리기엔 왠지 찜찜하다. 노벨상위원회가 문학상 선정 기준을 그 나라의 핵미사일 숫자나 대포의 크기, 또는 달러 보유고에 맞춰서 상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글에 비하면 턱도 없다는 일본의 히라가나와 가타가나 문자로도 그들은 노벨 문학상을 두 번 이나 타 먹었다. 세계적인 일본의 여류 시인(이바라기 노리코)이 입이 닳도록 찬양했던 한글의 우수성도 그 문자로 표현해 낸 문학 작품의 게임에서는 일본에 참패한 셈이다.

왜 그럴까. 혹자들은 국력으로는 어느 정도 겨룰 만한데 우리의 문학 서적 독서열이 뒤떨어져 세계적 대작가 탄생이 어렵다는 분석도 한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문학 부문의 비중은 고작 2.8%뿐이니 그렇잖겠느냐는 논리다.

또 다른 추측도 나온다. 어차피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수상 작품을 고르려면 그 작품을 읽어야 한다. 역대 유럽, 미주 수상자들이 쓴 작품들은 거의 다 알파벳 어계(語系)에서 쓰인 작품들로 그쪽 심사위원들이 문장의 이해나 글 속에 담긴 감성적인 표현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한글의 경우 '푸르스름한' 달빛이나 '고즈넉한' 달밤,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누룽지 같은 표현은 제 아무리 영어로 잘 번역해도 작가가 뜻한 감성은 코 큰 외국계 심사위원의 심금을 울리기가 어려우니 불리할 거란 논리다.

비슷한 맥락으로 한글이 외래어를 표기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자칭 '한글사랑 애국지사' 모임(김세환, 황일우 외 177명)이 벌이고 있는 발음 표기 변혁을 위한 한글 체계 개정 촉구운동으로, 한글날에 한 번쯤 경청해 볼 만한 논리다. 이 모임의 주장은 글로벌시대에 쏟아져 들어오는 외래어의 바른 표기를 위해서는 77년 전에 제정된 현행 한글맞춤법통일안의 한글 자모(子母) 표기법만으로는 정확한 외국어의 본디 소리를 나타내기 어렵다는 거다. 해외에선 분명 다른 발음인 P와 F를 똑같이 'ㅍ'으로만 표현한다거나 프랑스 정부가 빠리로 표기해 달라고 하는데도 맹점 있는 표기법만 붙들고 앉아 파리로 고집하고 있는 모순들을 예로 들었다.

애당초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은 순경음(脣輕音)인 ㆄ이나 ㅸ 등의 글자로 중국어, 몽골어, 일본어의 말소리를 그 나라 원음에 가깝도록 정확히 표현해 냈는데 훗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거꾸로 한글의 우수성을 후퇴시켰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동남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배운다며 우리 글이 최고라고 흥분한 적이 있었지만 현행 표기법대로의 한글 보급은 오히려 문제가 된다는 주장도 한다. 한글의 해외 보급은 이미 20년 전부터 태국의 고산족 다후족 중국 소수민족인 로바족, 오로첸족, 스리랑카(신할라어 문자를 대체) 등에 보급 운동을 펼쳐왔었다. 그러나 그들 민족의 언어(발음)를 원음대로 나타내는 데서는 문제가 있다 보니 각 보급 단체마다 임의로 글자를 보완해 만들어 한글을 보급한다는 주장이다. 단체마다 임의로 만든 자모 기호가 제3세계로 계속 퍼져나간다면 훗날 세계 속에서 한글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심각한 문제를 어쩔 거냐는 게 이 모임의 우려다.

세계화시대의 한글날은 시장바닥에서 한글로 디자인된 패션 이벤트나 하고 끝내는 자화자찬의 경축일이 아니라 깊이 있는 학문적 연구로 진화시켜 나가는 기념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발전적 변화를 위해서는 비록 소수의 의견이라 해도 뜻있는 연구자들의 새로운 생각을 경청하고 머리 맞대 들어보는 유연한 정부가 돼야 한다. 그런 혁신적 마인드 변화 없이는 노벨 문학상은 계속 남의 잔칫집 떡이 될 뿐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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