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추대란'에도 웃는 사람들…아파트 텃밭이 '대박'

직접 기른 채소로 이웃과 나눔 재미 솔솔∼

11일 오후 대구 북구 침산동 침산2차 화성타운 주민들이 단지 안에 마련된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1일 오후 대구 북구 침산동 침산2차 화성타운 주민들이 단지 안에 마련된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달성군 가창면 '가창주말농장'에서 3년째 배추와 무를 길러 먹고 있는 이윤동(52) 씨는 채소값이 폭등한 요즘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난감하다. 그는 30㎡ 남짓한 주말농장에 100포기가량 배추를 심어 다음달 말 수확을 앞두고 있다.

이 씨는 "배추값 파동은 남의 얘기지만 곳곳에서 '배추 좀 나눠먹자'고 부탁을 해와 난감하다"며 "나눠먹는 재미에 시작한 농사가 이렇게 상종가를 칠 줄 몰랐다"고 웃었다.

배추값이 고공행진하면서 서민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지만 도심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들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주말농장을 비롯해 도심 속에서 텃밭을 가꾸는 이들과 공동 농장을 가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채소값 걱정이 남의 일이다.

대구 북구 침산동 침산2차 화성타운 주민들도 '채소대란'을 비껴가고 있다. 1999년 입주할 때부터 10년 넘게 공동 텃밭을 일구고 있는 주민들은 상추, 고추, 가지, 쑥갓, 부추, 배추 등 각종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김영규 관리사무소장은 "전체 488가구 중 90가구에 3.3㎡(1평) 남짓한 텃밭을 분양해 겨울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채소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주민들이 텃밭을 분양받아 내는 돈은 연간 5천원. 수돗물 사용료가 전부다.

이곳 주민들은 3.3㎡ 남짓한 텃밭에 채소를 기르고 있지만 소출은 1가구가 먹고도 남을 정도다. 남는 채소는 자연스레 이웃과 나눠 먹는 게 일상화됐다. 주민들은 올해만 3번째 상추를 수확해 먹었다. 알배기배추, 일명 쌈배추도 텃밭 주인에게 말하고 한 움큼씩 가져가기도 했다.

주민 정윤선(60·여) 씨는 "올해 처음 농사를 지어봤는데 배추가 잘 자라줘 고맙다"며 "김장을 담그는 데 30포기만으로도 충분해 20포기 정도가 남을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남은 배추는 주민들과 나눌 예정이라고 했다. 9년째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양삼석(76) 씨는 "평소 노인들이 소일거리 삼아 해오던 텃밭일이 대박난 셈"이라며 "배추값 파동 이후 젊은층들이 텃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는 주부 배미화(48·수성구 신매동) 씨도 올 들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베란다에 가로 1.5m, 세로 50㎝ 규모의 텃밭을 꾸며 배추와 상추를 길렀기 때문이다.

스스로 '베란다 농부'라는 배 씨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정성을 기울여 기른 채소라 뿌듯함이 더하다"고 했다.

안재홍 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은 "녹소연이 3년째 운영 중인 '도시 농부학교'에 도시민들의 문의가 꾸준하다"며 "기회만 마련된다면 스스로 가꾸어 먹으려는 이들이 적잖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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