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트는 우연히 할아버지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무라트는 할아버지에게 시가 무엇인지 묻는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시란 '옳은 것을 멋진 감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처녀와 까만 망토를 걸친 잘생긴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밤과 낮의 은유인 이 이야기를 이해할 만큼 자란 무라트는 시를 쓰기 시작한다.'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의 단편 모음집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에 실린 '멋진 것과 옳은 것'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지즈 네신은 터키의 유명작가로 시,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백여 권이 넘는 작품들을 남겼다. 역사적으로 동로마제국의 수도였으며,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었던 터키의 작가답게 그의 글을 읽으면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독특한 느낌을 받는다.
'무화과 열매 속 씨를 본 적이 있는지?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에 이를지도 모르는 자디잔 씨들이 무화과 열매 안에 빽빽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엄마의 뱃속이 너무 좁아서 아기 무화과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우리는 왜 이렇게 수가 많아요?"라고. 엄마는 위험으로 가득한 바깥세상에서 무화과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종족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무화과의 삶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주 작은 무화과 씨에는 성이나 감옥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이 숨겨져 있고, 오래오래 참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성이나 감옥의 돌벽, 그리고 쇠창살을 결국 이기게 될 것이라는 걸. 그 말을 들으며 자란 무화과 씨는 참새의 뱃속을 거쳐 세상에 나온 뒤 영주의 성과 감옥, 농부들이 사는 곳을 경계 짓는 성벽돌 틈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깊이 뿌리를 내린 무화과는 마침내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리게 되는데….' 『어느 무화과 씨의 꿈』이라는 단편의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깊고 깊은 숲 속의 늑대들이 사냥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함께 모여 회의를 한다. 그때 한 원로 늑대가 의견을 낸다. 양들로 하여금 위대한 양들의 제국을 세우도록 유도하자는 것. 양들이 대양제국을 세우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을 때 그 지역을 포위해 양들을 실컷 잡아먹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늑대들은 양들 스스로 자신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해 양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주기로 한다. 그래서 가상의 적 '갈라핀톱'의 위험성을 양들에게 알리고, 위기 상황에 빠진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인 자신들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공포한다. 또한 늑대들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대양제국을 하염없이 꿈꾸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달콤한 이념인 '양(洋)주의'를 양들에게 심어준다. 곧 양들 사이에는 '양주의' 이념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늑대들의 치밀한 공작이 계속 진행된다. 드디어 대양제국을 세우기 위해 양들이 깊은 골짜기에 모였을 때 늑대들은 양들을 실컷 잡아먹는다. 한편 늑대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은 몇몇 영리한 양들은 숲의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숨어 있었다. 그들은 자손을 낳아 양의 종족을 유지시켰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양이라는 종족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맺는다'. 지배자의 통치에 대한 은유인 『양들의 제국』의 내용이다.
이외에도 유리창을 뚫고 밝은 바깥으로 나가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다 장렬하게 죽지만 그 무모한 용기로 인해 파리의 기념비로 남게 되는 젊은 파리 이야기인 『위대한 똥파리』가 있다. 요즘도 저편의 밝은 곳으로 가기 위해 쉼없이 유리창에 부딪히며 애를 쓰는 파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목숨을 잃기도 할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파리들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있다. 어둠 속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의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얘기는 파리들의 역사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또 우울증에 걸린 도시의 남자를 치유해주는 바닷가의 모래성 쌓기를 그린 『모래성과 아이들』 등 풍자와 위트가 넘치는 작품들이 많다. 아지즈 네신의 글을 읽으면 그가 터키 출신이라는 것, 터키 역시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것도 의식하게 된다.
댓글 많은 뉴스
尹 탄핵심판 선고 앞 폭동 예고글 확산…이재명 "반드시 대가 치를 것"
노태악 선관위원장 "자녀 특혜 채용 통렬히 반성" 대국민 사과
[단독] '애국가 부른게 죄?' 이철우 지사,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돼
[시대의 창-김노주] 소크라테스의 변론
선관위 사무총장 "채용 비리와 부정 선거는 연관 없어…부실 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