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탓티황옥(20) 씨가 시집온 지 일주일 만에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해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이주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멀리 이국 땅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베트남 처녀가 대구 사회와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나눔 천사'가 돼 화제다. 베트남 이주여성들을 위한 도우미로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았다가 나눔과 봉사로 당당한 '대구 사람'으로 살고 있는 보티 튀창(27·이하 튀창) 씨를 만나 '대구스토리'를 들었다.
13일 오후 달서구 두류동 성안광장오피스텔 내 베트남여성문화센터. 마침 베트남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네일아트 강습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날 이곳에는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폈다. 대구에 유학 온 베트남 유학생 튀창 씨가 이주여성 10명을 대상으로 네일아트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이주여성들의 맏언니'로 통한다. 한국어 선생님인 동시에 때로는 친정 엄마,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3년 전 베트남에서 대구로 시집온 원미년(29) 씨는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고 했다. 그는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고 싶어도 배우기 힘들었는데 같은 베트남 여성으로부터 배우니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으로 시집왔다 남편과 얼마 전 이혼했다는 네티놉(32) 씨도 강의가 시작되자 이내 어두웠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남편과 이혼 후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녀는 네일아트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다시 잡고 있었다. 네티놉 씨는 "튀창 씨가 우리에게 쏟는 정성을 보면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친정 엄마가 떠오른다"며 "강좌가 끝나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나눠 먹을 때면 팍팍한 이국 생활의 고단함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장군의 딸로 불린 '엄친아'
'베트남 국회부의장의 수양딸이자 재벌가의 여자, 명문대 출신의 미모의 재원….' 튀창 씨는 베트남에서 요즘 흔히 말하는 '엄친딸'이었다. 어린 시절 애칭은 장군의 딸. 튀창 씨의 할아버지는 월남전 당시 베트남 중부 하딩시의 총사령관을 지낸 전쟁 영웅이었다. 아버지 역시 군장성 출신으로 베트남에서는 알아주는 군인 집안의 딸이다. 어머니 역시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서 큰 무역업을 하고 있는 재벌가의 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고교시절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를 입고 우아하게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튀창 씨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장군의 딸이 온다'고 말하곤 했다. 공부도 잘했다. 중·고교 시절 반에서 상위권에 들었고, 베트남 명문 홍반 대학에서 베트남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무역회사에 취직해 경력을 쌓은 것도 장차 부모가 운영하는 무역업을 이어받기 위한 경영수업의 하나였다.
회사에서 근무한 지 3년쯤 지나,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던 튀창 씨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TV를 보다 우연히 한국으로 건너간 베트남 신부들의 비참한 생활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가난을 피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시집간 베트남 여성들이 기대와는 달리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멸시와 천대, 학대를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기 결혼으로 술집에 넘겨지거나 '첩실'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꿈틀!' 튀창 씨는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도우미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뭐가 아쉬워서 편안한 삶을 버리고 고생을 사서 하느냐. 더구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국이라니…." 부모님의 반대는 예상대로 강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시집간 베트남 이주여성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한 부모님이 허락을 했고 대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도록 공부를 계속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주여성들의 '친언니'
"대구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이주여성을 돕기 위해서는 이주여성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베트남여성연맹을 통해 대구에 한국 유일의 베트남여성문화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이렇게 시작된 대구와의 인연이 벌써 1년이 넘었다. 현재 튀창 씨는 대구공업대학 분장예술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튀창 씨는 바쁜 대구생활 속에서도 매주 3차례씩 달서구에 있는 베트남여성문화센터에서 이주여성들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튀창 씨는 이주여성을 상대로 상담역할을 하는가 하면 한국음식 만들기 등 전통문화체험, 가정방문 일손과 결혼식 돕기, 출산 도우미 등으로 대구 베트남 여성들의 '친언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빨리 한국 사람이 되라고 하면 안 돼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특히 한국 생활을 시작하는 베트남 여성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한글인 만큼 한글을 가르쳐주는 교육기관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최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한글을 가르치는 방문수업을 시작했다. 직접 종이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이해하기 쉽도록 그만의 교재도 만들었다. 튀창 씨의 이러한 노력은 센터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센터 구교훈 사무총장은 "가족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에게 튀창 씨는 친정 엄마"라고 했다.
◆'또이 요 대구'(대구를 사랑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적이자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에게 냉정한 한국의 대구.' 튀창 씨가 대구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가졌던 대구에 대한 속마음이었다. 그래서 대구 생활 초기 여전히 주변인일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여성문화센터에서의 활동을 제외하면 학교에서 늘 외톨이와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대구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구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대구는 물론 한국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만난 아줌마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예의 바르고 책임감 강한 대구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정을 많이 느꼈어요. 이제는 베트남 음식보다 김치찌개가 더 당기는 '대구 가시나'가 다 되었답니다. ㅎㅎ."
한국인의 '정'을 알게 된 그녀는 대구 내 베트남 사회에 한정됐던 봉사영역을 점차 밖으로 확대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해 베트남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국경을 초월한 정을 나누고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묘한 매력이 있어요. 봉사를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모두 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 같아요." 덕분에 튀창 씨는 이제는 이방인이 아닌 당당한 대구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갖게 됐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면 대구와 베트남 간의 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도 결혼이주여성들을 '노동력'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이 있어요. 대구로 시집온 이상 '대구의 딸이자 며느리'인 만큼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대해 주길 바랍니다." 인터뷰 내내 짬이 날 때마다 베트남 이주여성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하는 튀창 씨의 마음이 가을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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