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노벨상, 맹랑한 질문을 던지다

충분히 보도가 되었다시피, 금년 노벨 평화상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에게 주어졌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주동했던 류샤오보는 2008년에 공산당 1당 지배를 반대하는 '08헌장'을 기초함으로써 체제 전복 혐의로 11년 형을 받아 현재 랴오닝성 진저우 교도소에 복역 중인 인물이다.

나는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만약 노벨상을 주관하는 국가가 한국이나 일본이었다면 중국의 반체제 인사에게 상을 주었을까 하는 이상한 가정을 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에 일본이 중국과 영토 분쟁을 하고 있는 센카쿠(釣魚島)열도의 지배권을, 미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받아 천명했으나 이내 중국의 무역 보복을 받아 일종의 항서를 쓰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무역 보복에 국제사회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중국의 코털을 건드릴 터인가.

물론 이전에도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국제정치의 지형을 넘어서서 독재국가의 반체제 인사들에게 평화상을 수여하곤 했다. 특히 인권에 관해서는 집요해서 마틴 루터 킹, 안드레이 사하로프, 달라이 라마 등 수상자 목록을 거침없이 늘려왔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보편적인 가치로 간주하는 서방이 인권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건 사실이다. 1975년에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총 35개국이 핀란드에 모여 헬싱키협약을 채택한 바 있거니와, 거기서도 서방은 소련에 안보와 경제 협력을 해주기 위한 절대적 조건으로 인권의 보장을 주문하였다. 당시 소련은 서방이 요구하는 '인권'이 공산주의 체제의 균열을 겨냥하는 것 같다는 점을 느끼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안보와 열악한 경제 탓에 인권 보장의 조항을 수용하고 말았다. 서방이 요구하는 인권은 1당 체제 국가에는 독약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정말 그렇게 되어,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좀 더 흘러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하지만 중국을 향한 인권의 요구는 헬싱키협약 때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 인권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교환 조건이, 적어도 현재의 중국에 대해서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안보나 식량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은 자유로울뿐더러, 서방이 자신 있어 해왔던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거꾸로 서방이 중국으로부터 경제 협력을 받아야 할 지경이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가진 중국은 이미 세계의 시장이고, 세계의 굴뚝이다. 한국도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까지 중국 물품을 사서 쓰는 실정이니 서방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얘기를 돌리자면,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로 서방의 정치 체제의 역사는 거칠게 말하면, 제정(帝政)과 공화정(共和政)의 마찰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역사책은 제정이 공화정을 견뎌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1당이 지배하는 공산주의도 제정이거나 적어도 과두정(寡頭政)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중국은 이미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공리에 맞서서 예외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과점 정치 체제가 영속되리라고 확언하기에는 이르지 않을까 싶다. 이번 노벨상을 두고 중국 당국이 보인 과민 반응을 보면 중국 공산당이 가진 불안의 깊이를 읽을 수 있겠다.

그런데 관건은 중국 내부가 아니라 서방과 주변국인 듯 보인다. 각 국가들은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물건을 팔 중국 시장을 넓히는 데 골몰해서, 경제 협력 등의 '지렛대'를 사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의 정치적인 안정을 바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종교를 포함한 기본적인 자유권과 평등권, 자결권 등의 인권 요구가 중국에 먹혀들지 의문이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이번 노벨위원회가 던진 질문은, 헬싱키협약에서 사용한 '지렛대'가 없는 상황에서, 각국의 경제인들이 중국의 정치적 안정을 은밀히 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중국 내의 반체제 인사들이 타국의 일부 지식인들과 정서적 교류만 나누는 고독한 처지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중량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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