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한번 다녀가라고 통기하듯 쓰고 싶었다
열두 살 아들내미 지켜보는 자리에서
문 바르고 남은 한지에다 간곡하게 적고 싶었다
일곱 번을 썼다가 구겨버리고 해질 무렵에
옆집 가서 노인에게 부탁해서 한 장 써 왔다
첨잔이 무엇이고 축문을 어찌 알았으랴
조율시이 홍동백서 들은 적 있어도 아예 몰랐다
첫제사 때 봤던 기억 없고 모조리 초면 같다
순서는 몰랐어도 정성껏 지지고 구워 한 상 올렸다
무엇보다 바나나가 풍성해서 보기 좋았다
낮에 따서 올린 복숭아 몇 개도 왠지 낯설지 않았다
아들내미 까무룩 조는 아홉 시 쯤 향 피웠다
대충 몇 번 절하고 술잔 물려 음복을 했다
지방은 타서 흩어지고 베트남 아낙 울지 않았다
들은 귀는 있었는지 열어둔 방문으로 달빛이 쏟아졌다
초저녁이라 남편 제사 하루 당겨 지낸 꼴이 되었다
보아하니 한국으로 팔려오듯 시집온 '베트남 아낙'의 남편 기제사 얘기이군요. 지방(紙榜)을 쓰는 그 심정이 "꿈에 한번 다녀가라고 통기하듯 쓰고 싶었다" 하니, 참 애절하고 간곡하기 그지없는 사부곡(思夫曲)입니다. "일곱 번을 썼다가 구겨버리고 해질 무렵에/ 옆집 가서 노인에게 부탁해서 한 장 써 왔다" 하니, 그거 하나면 되었습니다. 지방을 반듯하게 준비한 그 정성에다, "순서는 몰랐어도 정성껏 지지고 구워 한 상 올렸다" 하니, 그까짓 조율시이니 홍동백서니 하는 법도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바나나가 풍성해서 보기 좋았고, 제사엔 쓰지 않는다는 복숭아도 낮에 직접 따서 올린 것이니, 아낙의 눈에 낯설지 않으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까무룩" 졸기는 해도 열두 살이나 먹은 아들내미가 있어, 우리의 베트남댁 과부는 울지 않았다지 않습니까. 초저녁이라 남편 제사 하루 당겨 지낸 꼴이 된들 어쩌겠습니까. 제사란 것도 어쩌면 결국은 산 사람들의 몫일 테니까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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