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통증이 장악한 삶

7일 행복 전도사 최윤희 씨 부부가 자살을 했다. 그녀의 유서에는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한다. 통증이 심해 견딜 수가 없는 상황에서 남편이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해 동반 떠남을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조절되지 않는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통증이 심한 말기암환자를 돌보는 나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통증은 어떠한 경우라도 조절해야하고, 할 수 있다.

통증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통증은 암의 종류나 전이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 따라 달라지는 증상이다. 예를 들면 전이 정도가 같은 위암일 경우에도 암의 크기에 따라 진통제의 용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환자가 아프다고 말하면, 의사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 절대 엄살이 아니다.

말기 간암환자인 강수길(가명·50) 씨는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통원치료하던 중 통증7(산통과 비슷한 정도의 통증) 이상의 돌발성 통증 때문에 입원했다. 마약성 진통제로 암성통증이 조절되자, 식사도 잘하시고 산책도 열심히 하셨다. 하루 서너 차례 있었던 돌발성 통증이 사라지자, 그는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해도 마약중독자로 되는 경우는 지극히 낮다는 등의 의학적 설명이 통하지가 않았다. 황달도 심해지고, 상복부에서 만져지는 암덩어리도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많이 아파보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면담을 요청했다. '통증과 조금 남은 삶'에 대해서 슬프지만 현실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대충 얼마 더 살 것 같은가요?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가 먼저 말을 했다. 옆자리에 앉은 그의 아내는 벽만 보고 있었다. 환자가 아프고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호자도 같아진다.

여명을 말해주는 대신, 그의 두 손을 지긋이 잡았다. "죽음은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기도 하지만, 강 선생님의 영혼과 몸이 이별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오기까지는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거지요. 통증을 적극적으로 조절해야지만 그런 여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 힘이 점점 없어져서 손을 움직일 수도, 스스로는 소변을 볼 수도 없을 때가 옵니다. 조금 남은 삶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아 있는 가족은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해 주실 거죠?"

짧은 시간의 면담이었지만, 서로 마음이 통했다. 난 진통제 양을 늘릴 수 있었고, 그는 나를 믿고, 그때가 오기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었다. 호스피스병동에 근무하면서 우리의 마지막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죽음이 스스로 올 때까지 서로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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