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과테말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유는 60여 년 전 과테말라에서 죄수들과 정신병자들을 상대로 벌어진 성병 관련 생체실험 때문이었다. 실험은 1946년부터 3년간 미 공중보건국 주도로 진행됐으며, 과테말라 교도소 내 죄수와 정신병원 수용환자 1천600여 명에게 매독과 임질균을 감염시켰다. 일부러 균이 든 주사를 놓거나, 성병에 감염된 매춘부와 성관계를 맺도록 했다. 당시 갓 등장한 페니실린이 성병에 효용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과테말라 실험이 밝혀진 이유는 '터스키기 실험' 때문이다. 1932년부터 무려 40년간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키기 지역에서 흑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매독 생체실험을 '터스키기 매독연구'라고 부른다. 유난히 매독 환자가 많았던 이 지역 환자들 중 99%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미국 공중보건국은 매독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이들을 치료할 계획은 없었다.
백인 의사들은 정기적으로 흑인 환자들의 피를 뽑았고, 심지어 척추에서 뇌척수액을 뽑기도 했다. '나쁜 피'(Bad blood)라는 병에 걸렸으며 이를 무료로 치료해준다고 속였다. 1943년 페니실린이 개발됐지만 이들에게 투약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치료를 막았다. 지역 보건소가 성병 치료 프로그램을 펼칠 때에도 공중보건국은 실험 대상자를 치료하지 말라고 보건소에 경고했고, 미군이 지역 청년들을 징집해 매독 치료를 명령했을 때에도 256명의 환자 명단을 건네며 치료에서 빼달라고 요구했고 미군은 이를 받아들였다.
실험 관련 논문이 쏟아졌고 10여만 명의 미국 내 의료인이 읽었지만 아무도 비윤리성을 문제삼지 않았다.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공중보건국 직원 피터 벅스턴 덕분이었다. 이미 1966년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중보건국을 그만둔 뒤 1972년 친구인 신문 기자에게 이를 알렸다. 전국 일간지 머리기사를 장식한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실험 참여 의사들은 반성할 줄 몰랐다. 어차피 피험자는 죽어갈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의학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주장했다.
임상연구(Clinical study)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약품, 시술법, 의료기구 등을 시험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인간 대상 실험에는 반드시 윤리적 검증이 따라야 한다. 생명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가 병원 및 연구기관마다 설치되고, 연구계획서(프로토콜)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무자비한 생체 실험에 대한 대비책으로 10개 조항의 뉴른베르크 강령이 발표됐고, 앞서 터스키기 실험 이후 미국에선 '벨몬트 보고서'가 작성돼 피험자 권익 보호의 토대가 마련됐다.
인권 보호를 위해 시작된 IRB는 이제 신약 및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 됐다. 어떤 IRB를 통과했느냐에 따라 연구 논문의 신빙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주요 제약사와 의료연구기관이 미국 WIRB(Western Institutional Review Board)를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최근 대구가톨릭대의료원이 WIRB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방과 한방을 아우르는 통합의료 분야에서 IRB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후 첨단의료복합단지 내 통합의료센터에서 이뤄지는 임상연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한 셈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지역 의료계는 통합의료 분야에 대한 프로토콜 심의를 위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기준이 세계 통합의료 임상연구의 잣대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양'한방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기회다. 두 번 오지 않을 기회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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