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는 지금 '사진의 역사'를 놓치고 있다"

'대구사진사' 펴낸 김태욱 대구사진문화연구소장김태욱 대구사진문화연구소장.

1950~60년대 대구는 한국 사진의 메카였다. '남에는 최계복, 북에는 정도선'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국내 사진(예술)계의 큰 축이 대구의 최계복이었다. 그와 동년배로 대구에서 활동했던 안월선, 구왕삼은 사실주의와 조형주의 논쟁을 벌이며 한국 사진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대구 사진의 역사는 이토록 화려하지만 정작 이 역사는 과거에 묻혀 있었다. 2004년 우연찮게 책 '대구사진사'의 자료 수집을 부탁받았던 김태욱(42) 대구사진문화연구소 소장은 이 사실에 충격 받았다. 김 소장은 아예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시대 사진 역사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동료 사진작가 석재현, 박다실도 함께 팔을 걷어부쳤다.

"특히 한자를 해석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당시에는 간자체를 썼기 때문에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글자가 많아요. 한 글자를 두 달간 연구한 적도 있어요."

1950~60년대 사진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유족들은 가난한 시절,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누빈 가장 때문에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지긋지긋하다'고 사진을 박스째로 버리기도 한다. 그 사진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80% 가량의 자료는 사라지고 없다.

그는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더 많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알음알음으로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빌려달라고 설득한다. 어떤 사진작가는 유족을 찾는데만 2년이 걸린 경우도 있다. 지금도 대구 조형주의 사진사에 방점을 찍은 남전사우회 소속 조상민의 유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17명의 사진 작가의 자료를 정리했다. 이를 정리한 책 '대구사진사'를 올해까지 총 5권 펴냈다. 사실주의와 조형주의로 나뉘어 정리한 '대구 근대사진의 모색'도 출간했다.

김 소장은 자신이 정리한 사진 작가 가운데 구왕삼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그는 역사 속에 묻혀있던 구왕삼을 발굴, 한국 사진 역사에 우뚝 세워놓았다. "1940년대 그의 정물 사진을 보고 소름이 쫙 끼쳤어요. 그 정도로 수준 높았죠. 사진에 대한 이론이 없던 시절, 신문 기고를 통해 리얼리즘 논쟁에 불을 붙였어요. 이론과 실기 모두 완벽한 분이셨죠."

그는 사진은 중요한 문화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이미 21세기 들어 사진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대기업은 사진연구소를 세웠다. 그는 대구가 놓치고 있는 사진 역사가 서울로 모두 팔려나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진사에서 중요한 사진 자료들이 타지로 판매된다면 우리는 후대에 보여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비싼 값에 빌려와야 하죠.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작지만 알찬 근대사진연구소나 전시관이 필요합니다."

그는 현재 1950년부터 1963년까지 사진들을 정리했다. 1970년대부터는 유신 정국으로 인해 사진의 암흑기에 들어선다. 그는 1940~60년대 대구사진사 자료집을 2권 펴내는 것이 최종 목표다. 대구 사진역사를 정리하느라 결혼과 사진 작업 등 개인사는 접어둔 지 오래다. 그는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 기간인 24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대구근대사진의 모색'전을 열고 있다.

"옛날 사진 한 장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이제 우리가 그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호해야 할 때입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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