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옳고 그른 것은 분명히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가 패배한 결정적 원인은 내부 분열 때문이었다. 스탈린의 꼭두각시였던 스페인 공산당이 권력 장악에 나서면서 공화파는 '내전 속의 내전'에 빠져들었다. 공산당은 공화파 내 다른 파벌들이 괴멸되기를 바라며 고의로 포격 지원이나 공습 지원을 해주지 않았고 많은 공화군 병사들이 탈주자, 반역자, 스파이로 몰려 살해됐다.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 소속 민병대로 참전 중이었던 조지 오웰도 이때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죽을 뻔했다.

오웰은 이 얘기를 좌파 언론 '뉴 스테이츠먼'에 발표하려 했으나 편집장 킹슬리 마틴(그는 오웰이 죽기 직전 영국 정부에 넘겨준 공산주의자이거나 동조자로 의심되는 38명의 명단, 이른바 '오웰 리스트'에 들어 있는 인물이다)은 거절했다.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공화파에 대한 서구의 지원에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뒤 오웰의 기사는 우여곡절 끝에 '뉴 잉글리시 위클리'라는 잡지에 실리긴 했지만 좌파 지식인들은 외면했다. 그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비겁함은 서구 좌파들의 전매특허다. 사르트르는 1954년 4월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소련 시민들은 우리보다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정부를 비판한다. 소련에는 완전한 비판의 자유가 있다." 훗날 이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그는 이렇게 둘러댔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고국에 돌아오기 무섭게 나를 초청해 준 나라를 모욕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식인의 두 얼굴' 폴 존슨) 그에게는 소련 인민을 위한 진실 폭로의 예의보다 소련 권력자를 위한 '진실 왜곡'의 예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궤변과 위선, 비열함은 이 땅의 좌파들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북한 3대 세습에 대한 국내 좌파들의 반응은 지난 세기 서구 좌파의 맹목을 빼다 박았다. 일부 진보 지식인들이 비판을 제기하고는 있지만 좌파 진영의 지배적 기조는 침묵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좌파들이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르는 인식론적 파탄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북한 3대 세습에 대해 "북한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는 민노당의 성명이다. 그 의미는 민노당 부설 '새 세상 연구소'의 부연 설명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3대 세습으로 남측 사회의 마음은 불편하지만 불편하다는 것이 그릇된 것으로 직결돼선 곤란하다. 우리에게 불편하다고 인식되는 것이 다른 이들(북한)에게는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19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처해 있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런 시도는 불가능하며 아예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서사'(이야기)가 있고 저들의 서사가 있을 뿐이며 모든 서사는 동등하게 옳다. 객관적 진리 따위는 없다."

이는 참으로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 종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은 없고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의 처녀들을 성 노예로 삼았다는 우리의 서사와 그런 사실이 없다는 일본 측의 서사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3대 세습을 북한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면 논리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시각을 인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지 못하는 도덕적 허무주의에 다름 아니다. 민노당은 여기에 무엇이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물론 객관적 진리에 이르는 길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직관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안다. 오늘날 식인 풍습, 인신 공양, 노예 제도, 남존여비를 옳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3대 세습도 그렇다.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른 것이다. 그 이유는 굳이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3대 세습은 북한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인식론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땅의 좌파에게 미래는 없다.

鄭敬勳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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