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삼요소는 풍경 음식 사람이다.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요소의 순서가 사람 음식 풍경의 순으로 뒤바뀌면 행선지가 어딘지 간에 여행이 훨씬 더 즐거울 것 같다. 이를 좀 근사하게 말하면 '경불여식 식불여심'(景不如食 食不如心)이라 해도 좋으리라.
젊은 시절에는 오로지 '떠난다'는 사실만이 즐거워 먹거리와 잠자리가 다소 불편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늙마에 이르면 불편을 싫어하고 안락을 시녀처럼 거느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경치보다는 음식, 음식보다는 마음에 맞는 주변 친구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음 맞는 친구가 경치'음식보다 더 중요
이 요소들을 제대로 지킬 줄 아는 친구들과 최근 4박 5일 일정으로 제주로 떠난 적이 있다. 이 모임의 멤버들은 풍경보다는 인정을 우위에 두지만 때론 음식을 맨 앞에 기수로 내세워 장거리 행군을 할 때도 있다. 준비물은 각자 알아서 챙기되 술 한 병과 반찬 한 가지 이상은 필수였다. 술은 막걸리든 양주든 종을 지정하진 않았다. 그것 역시 '너를 믿는다'는 인심을 최선으로 치는 불문율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출발 후에는 숙식장소를 묻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아무도 오늘 밤을 위해 머물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이번 나들이가 무계획 속에 이뤄지는 '슬로 투어'였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반드시 바른 목표를 세우고 일로매진해야 하지만 은퇴자들의 느슨한 여행에는 타이트한 스케줄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먹고 잠자야 할 곳이 필요할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정하기만 하면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숙식'장소 묻지 않는 '슬로 투어'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포장일 뿐 행사를 뒤에서 주도하는 리더의 머릿속에는 쫀쫀한 계획표가 들어 있기 마련이다. 부산~제주 간 페리호에서 밤바다의 정취를 즐긴 후 하선하면 바로 올레 1코스로 달려가 15㎞를 걷는 일. 걷는 내내 탐라의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드넓게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와 한라산을 생각으로 탐하고 눈으로 간음할 것을 은근하게 부추기는 일. 그리고 돌담에 기대어 해풍 맞은 탱글 무를 씹으며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지난 생애와 앞으로 남아 있는 날들을 헤아려 보면서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일들이 모두 그의 몫이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올레 길에서 내려오니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서부두 물항식당에서 먹은 아침 갈치국 백반은 근기가 없는지 모두들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번 제주에 온 궁극의 목표는 서귀포 보목동 261 어진이네 횟집(064-732-7442)에서 제주 특산 자리돔 요리를 즐기는 것이다.
눈에 선한 자리돔 물회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표선을 거쳐 서귀포로 달린다. 렌터카 운전기사는 자기가 추천하는 식당에 가질 않고 우리가 "어진이네 횟집으로 가자"고 닦달을 하니 "위치를 모른다."며 어깃장을 부린다. 제주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투어 프로들에게 그런 수작이 통할 리가 없다.
##입안 꼭꼭 찌르며 씹히는 맛 일품
식당의 벽면을 쳐다보니 '어진이네 자리는 기계로 썰지 않는다.'고 씌어져 있다. 물회 한 그릇에 밥과 반찬 끼워서 몽땅 칠천 원이다. 값만 싼 게 아니라 양도 넉넉한 편이다. 우린 물회 강회 무침 구이 등 자리돔으로 만드는 메뉴는 모두 시켰다. 식탁은 풍성했고 고팠던 배가 불뚝 일어섰다.
이 집의 자리돔 요리는 뼈와 지느러미를 제거하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입안을 꼭꼭 찌르며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먹는 이의 식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리강회와 자리구이가 특별히 맛있었다. 자리돔을 먹고 앉았으니 요즘 유행하는 광고 카피가 언뜻 떠올랐다. "자리돔! 남자한테 참 좋은데, 여자한테도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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