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희준의 캐나다 편지] 대구, 서울, 그리고 몽튼

#이번 주부터 4주에 한 번씩 본란을 통해 '김희준의 캐나다 편지'를 게재합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직장생활을 한 필자는 지난해 캐나다에 정착한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필자는 이민생활에서 겪는 애환과 에피소드, 캐나다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상 등을 담담하게 풀어나가겠다고 합니다.

이제 마흔에 접어든 나는 열 살 딸과 네 살 된 아들을 둔 가장입니다. 역마살이 조금 있는데다 호기심까지 많아 한국땅은 거의 다 둘러봤다 해도 거짓말이 아니고, 입고 먹는 비용 줄여 모은 돈으로 가끔 해외여행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캐나다 뉴브런즈윅 주(州) 몽튼(Moncton)에서 살고 있습니다. 캐나다 동쪽 끝에 있는 몽튼은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이며, 약 100가구의 한국 가정이 있습니다.

필자는 20대 후반에 은행에서 근무하며 집 사고 결혼까지 했으니 꽤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다 할 만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강해, 늘 대구를 떠나 서울로 가고 싶어했습니다. 같은 나라에서 똑같이 세금을 내는데 경제'문화적 혜택은 서울이 다 누리는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했고 운 좋게도 대기업 IT 회사, 그것도 한강이 바로 보이는 여의도에서 새 출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서울 생활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집 넓이를 대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했고 출퇴근 시간도 3배로 늘어났습니다. 직원 대부분은 명문대 졸업자였고, 어학 실력으로 무장한 젊은이들과 해외 유학파 출신들이 많아 나 같은 지방대 출신은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성격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중 앞에 서기 두려워하던 필자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고 모임을 주도하는 도전적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변화는 서울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자연스레 얻은 산물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에서 꼭 필요한 3대 요소는 혈연, 학연, 지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무렵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천진스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딱히 떨어지는 대답을 못 찾겠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캐나다로 가자.'

이후 적극적으로 '이민'을 준비했습니다. 2009년 3월 말 우리 가족은 인천공항을 떠났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당신은 어디서 왔으며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필자는 아주 상투적으로 "삶의 질 향상과 아이들 교육 문제로 왔노라" 하고 대답했습니다. 좋은 직장은 아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고, 모기지(저당권)가 많긴 해도 내집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냥 뛰어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로서 덩달아 행복한 기분을 맛보고 있지요.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력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함도 큽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캐나다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 그리고 친절해 보이는 사람들, 생활 물가가 매우 싸 보이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와 문화적 이질감,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이민 생활의 환상이 하나둘씩 깨질 때마다 '괜히 왔나'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교육과 더 나은 삶의 질, 안락한 노후는 캐나다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걸 이루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땀과 노력, 눈물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여 크게 이루기보다 가족들이 캐나다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버티기' 전략으로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말입니다.

타국에서 고향 소식을 들으면 귀가 번쩍 뜨입니다. 지난여름 세계주니어육상대회를 막 마치고 돌아가던 네덜란드 관광객으로부터 들은 '대구'라는 말에 반색하며 여기저기 안내해준 기억이 납니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소식이 이 먼 곳까지 들려올 정도이니 앞으로 고향 대구가 세계적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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