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동물들이 다가오는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새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그 교육과정은 '헤엄치기' '달리기' '나무 오르기' '날기' 등의 과목으로 짜여 있었다. 교육과정 운영 편의를 위해 모든 동물들이 예외 없이 전 과목을 배우도록 했다. 오리는 헤엄치기가 뛰어났다.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오히려 나았다. 그러나 날기는 겨우 낙제점을 면했으며, 달리기는 점수가 너무 낮았다. 방과후학교에서 달리기를 더 배워야 했다. 달리기 연습을 너무 많이 하여 물갈퀴가 너덜너덜해졌다. 그래서 헤엄치기 실력도 떨어졌다. 헤엄치기에서 평균 점수를 겨우 얻었다. 평균 점수만 받아도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오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잘하는 토끼는 부족한 헤엄치기를 배우기 위해 물속에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가 신경쇠약에 걸렸다. 나무 오르기를 잘하는 다람쥐는 무리한 날기 연습 때문에 근육에 쥐가 나서 나무 오르기조차 보통을 받았다. 날기를 잘하는 독수리는 나무 오르기에서 큰 날개를 퍼덕여 다른 동물에게 방해가 되어 결국 문제아 취급 받았다. 그래서 학년이 끝날 무렵 헤엄치기도 잘하고 달리기, 나무 오르기, 날기까지 평균적으로 잘하는 뱀장어가 우수 학생이 되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나오는 우화다. 마치 우리나라 교육을 풍자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는 많지만 보낼 만한 학교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의 능력이나 개성을 따뜻하게 보살피면서 공부시키는 그런 학교, 선생님, 제도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모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기보다는 모든 과목을 잘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물론 모든 과목에서 어느 정도 실력까지 갖추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특기마저 해치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선택교육과정이 2년에서 3년으로 1년 늘어났다. 아이들의 흥미와 적성을 살려 주기 위해 고등학교부터 바로 선택교육과정이 시작된다. 따라서 2011년부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바로 계열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씁쓸한 진실이 숨어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성패는 현실적으로 대학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대학들이 손쉽고 편하다고 수능시험 점수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문서상에서만 존재한다. 문제를 푸는데 방해가 되는 깊이 있는 사고력을 키우는 공부나 독서는 하지 않는다.
대학의 날기 학과에서는 반드시 독수리를 선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헤엄치기도 잘하고, 달리기와 나무 오르기, 날기까지 평균적으로 잘하는 뱀장어가 선발된다. 날기 학과에 들어 온 뱀장어는 날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대학은 다양한 전형을 통해 독수리와 같은 잠재적 능력을 가진 학생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학교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될 뿐이다.
한원경(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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