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길

#길

제법 춥다. 목도리에 모자까지 쓰고 저녁 산책에 나섰다. 바람이 칼칼하다. 바람에 칼칼하다는 표현이 적합한지 모르겠지만 바람과 만나는 순간 며칠 전 먹은 해물찜이 생각났다. 바로 그 맛이다.

이 길은 수개월 걸어다녀 마치 내 몸처럼 훤하다. 어느 지점에 팔각정과 운동기구가 있는지,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있는 위치도 꿰뚫고 있다. 마음으로 익힌 길이라 몸은 더 익숙해져 있다.

나는 길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면 걸어보고 싶어진다.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도 좋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길도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솔길, 비탈길, 넓은 길, 좁은 길, 샛길 등 이름도 다양하다. 나는 모든 길이 공원처럼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았다.

아이는 자신이 걸어가고픈 길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무얼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다 하고 싶단다. 다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 가지만 제대로 해서 그 분야에서만큼은 인정받게끔 키우고 싶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전공탐색 검사를 한 결과 아이는 다중잠재 소유자의 자질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런 경우 조기 판명을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여러 갈래로 난 길 중에서 아이가 그곳에 섰을 때 가장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지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오늘도 아이와 나는 그게 어떤 길인지 찾고 있다. 길이 하나밖에 없으면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여러 개의 길 앞에 서니 더욱 혼란스럽다. 나는 아이에게 이 길에도 서 보게 하고 저 길에도 서 보게 한다. 아이는 이 길도 싫지 않고 저 길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머잖아 아이도 저 길들 중 한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나는 길도 위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처럼 검진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검진이 가능하다면 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미리미리 처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길의 문제든 마음의 문제든 조기에만 발견하면 길의 중간 지점에서 U턴해야 할 일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선택해야 할 길은 내가 산책하는 공원처럼 짧고 단순한 코스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길이든 길 위엔 다양한 빛과 사람과 소리가 공존하고 있으며 그 매력 때문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란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임수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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