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첩보의 모호성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군 17개 여단이 전멸한 1973년의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재앙이었다. 전쟁이 벌어지기 2년 전부터 이집트는 "전쟁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공언하며 병력과 전투 장비를 수에즈 운하 근처로 집결시켰다. 이어 1973년에도 사다트 대통령은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 "전쟁 준비를 위해 온 나라가 만반의 채비를 갖추는 중"이라며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때 이집트는 이미 전쟁 준비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였다.

이스라엘 정보원들은 이런 움직임을 포착하고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특히 1973년에는 이집트군이 19번이나 전시 체제에 돌입했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이 연속되다 보니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오판하게 됐고 그 결과 이집트군의 선제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어떤 사건의 전조(前兆)로 보이는 첩보나 정보는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이 9'11테러를 암시하는 여러 단서들을 사전에 포착하고서도 막지 못한 것도 바로 첩보의 그 같은 모호성 때문이다. 그런 첩보가 있을 때마다 경보를 울려 대면 9'11테러 같은 재앙의 사전 차단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정부가 '양치기 소년'꼴이 되기 십상이고 이는 국민들의 자극의 역치(値)를 높여 경보에 둔감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경보 체제를 민감하게 만들면 기습공격을 당할 위험은 낮아지지만 오(誤)경보의 확률은 높아지며, 오경보는 다시 민감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말콤 글래드웰)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합참의 위협자산 목록에서 제외돼 있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당시 연어급 잠수정은 실전 배치되기 직전 단계여서 어뢰 공격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군의 이 같은 설명은 모호성이라는 첩보의 속성에 비춰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군의 오판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렵지만 모호성의 안개를 걷어내고 오판의 가능성을 낮추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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