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차카게' 살자

여당, 말뿐인 친서민 정책 행보, 당은 재벌 수사에 안절부절

한동안 '바르게 살자'라는 말이 유행했다. 같은 제목의 영화까지 개봉돼 100만 명이 넘게 봤다고 한다. 사우나에서 벌어진 이런 우스개도 있다. '차카게 살자'라는 문신을 몸에 떡하니 새겨넣은 '깍두기 형님'을 본 사람들이 소리 내어 웃지도 못하고 욕탕에서 엉거주춤하니 있었다는 얘기다. 제딴에는 '착하게 살자'는 말이 그럴듯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마땅히 새겨 넣을 말이 그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르게 사는 것이 맞는 말이라는 건 알았던 모양이다.

이런 황당 시추에이션이 지금 사우나 밖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무대는 몇몇 재벌에 대한 검찰 수사를 놓고 여야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국회다. 여당 대표가 원내 교섭단체 연설에서 개혁적 중도 보수를 강조하며 '서민'이라는 용어를 34번이나 들먹였다. 야당 대표는 한 술 더 떴다. 30분 남짓한 연설 내내 '이명박 정부'를 33차례나 거론하며 '재벌 수사를 빌미로 야당 탄압하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미리 대못을 박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국회에서 벌어질까. 평소에 '서민'은 안중에도 없던 한나라당이다. 배부른 부자당이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희석하려고 뒤늦게 '공정사회' '서민' 피켓을 내걸고 안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좀 더 다급해 보인다. 여당 시절 검은 거래가 드러날까 뒤가 켕기지 않고서야 현 집권당의 실정을 집중 거론하며 맞불을 놓을 이유가 없다. '차카게' 살지 못한 재벌들이 저지른 부정과 비리를 놓고 국회가 굿판을 대신 벌이고 있으니 사우나 '형님'이 보여준 포복절도의 코미디보다 더 딱하다. 이런 신물 나는 연설에는 차라리 눈 감고 귀 씻고 싶은 게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국회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국민들 관심사는 여야 대표들이 경쟁하듯 내뱉는 동어반복이나 사탕발림이 아니다. 부도덕한 재벌들이 벌인 온갖 추잡한 비리가 이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 것인지, 서민들은 또 얼마나 어깨가 축 처질 것인지 하는 걱정이다. 한화와 태광, C&그룹 등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재벌들이 왜 바르게 살지 못하는지, 누가 한배를 탔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회사자금 빼돌려 비자금 만들고 힘 있는 정관계 인사에 로비하고, 쭉정이 회사 만들어 힘없는 서민과 소액 주주, 봉급쟁이에게 치명타를 입힌 범인들 얼굴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한쪽은 초록은 동색이랄까봐 전전긍긍하고 다른 쪽은 뒤탈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직하고 바른 삶을 뛰어넘을 덕목은 없다. 더욱이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먼저 바르게 살지 않으면 국가나 사회,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잘된 나라나 사회가 있다면 거짓말이다.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와 사회는 이미 망조가 든 것이고 이미 내리막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온 세계가 품격 따지고 도덕성을 강조하며 경각심을 높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는 '잘 먹고 잘사는' 데에만 골몰해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성과 보편적 가치를 나 몰라라 한다면 이미 결론은 뻔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로운 일'이라고 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경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대체(大體)를 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기르는 사람은 소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재벌들이 온갖 부도덕한 일들을 꾸며 큰돈은 만졌으되 품은 뜻이 탐욕스럽고 행실이 바르지 않으니 국민들이 경시하고 소인배 취급하는 것이다. 재물에 염(廉)하지 못하고, 직위에 염을 실천하지 못하니 이런 사단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리 줄 대고 저리 돈 뿌리고 자식에 사돈팔촌까지 한몫 챙기는 특혜와 특권이 난무해도 이를 비정상적으로 보지 않는 사회라면 조폭의 '차카게 살자' 문신을 비웃을 이유가 없다. 제 자신이 바르게 살지 못하는데 주먹 좀 쓴다고 질시하고 콧방귀 뀌어봐야 제 꼬락서니만 우습게 되는 것이다. '차카게 사는 데 합의하지 않으면 문 걸어 잠근다'고 한마디 해줄 사람 어디 없나.

徐 琮 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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