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윤양덕 美 최대 목재수출회사 NORFI 회장

2015년 매출 목표 5억 달러…연중 6개월은 산림에 파묻혀 살죠

텔렉스(telex·가입전신)는 요즘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20세기의 유물'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팩스가 없던 1970년대 수출 전선에서는 최고의 통신수단이었다. 경제부흥기 한국 수출산업을 이끌며 세계 최대 규모의 합판회사로 명성을 떨쳤던 '동명목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9년 공채로 입사했던 회사가 1년 뒤 신군부에 의해 졸지에 문을 닫게 됐습니다. 워낙 어수선했던 터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저는 공매로 나온 텔렉스부터 챙겼습니다. 무역부에서 일했던 터라 텔렉스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았던 덕분이죠."

훗날을 기약하며 국내외 거래처 정보가 모두 담긴 텔렉스를 안고 동명목재 사옥을 걸어나왔던 젊은 무역인은 이제 미국 내 최대 목재 수출회사의 대표가 됐다. 한국·러시아·중국에 지사를 운영하고 연중 6개월은 전 세계 산림에 파묻혀 사는 윤양덕(58) 노던포리스트인베스트먼트(NORFI) 회장이다. "목재는 인류가 가진 유일한 재생가능 자원입니다. 산림을 베어낼 때는 그만한 면적에 새로 나무를 심는다는 계약 조건이 붙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림녹화에 총력을 기울였던 덕분에 강산이 다시 푸르러졌지 않습니까?"

1982년 자신의 회사를 차려 독립한 그는 1984년 미국으로 진출했다. 국내 시장이 너무 작다는 판단이었다. 요즘은 미국의 최대 목재 집산지인 시카고 인근의 애팔래치아산맥에서 활엽수를 벌채, 중국·유럽 등 세계 각국에 수출한다. 2015년 매출 목표는 5억달러.

한때 국내 기업의 악기 제조용 나무 전량을 공급하기도 했던 그는 음악계에서 알아주는 클래식 마니아이다. 특히 바이올린·첼로 등 고급 목재 악기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고 바이올린·피아노·드럼·기타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다. "큰누님이 제가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셨어요. 작고하신 형님도 바이올리니스트였고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던 덕분에 고교 때는 교내 그룹사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했죠. 요즘도 가끔 악기를 연주하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는 30년 경력의 와인 전문가로 120여 명이 참여하는 와인동호회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클래식과 와인은 언뜻 보기에도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지만 그에겐 두 가지 취미가 봉사활동의 방편이다. 와인동호회에서 수시로 실내악 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으로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악기를 구입해주거나 무료 레슨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 "20년 전쯤 잠시 사업자금이 모자라 대구 팔달교 인근에 있던 땅을 팔았던 게 지금껏 가장 후회되는 일입니다. 줄리어드음대 같은 명문 음악학교를 고향에 세우는 것이 제 꿈이었거든요. 언젠가 꼭 다시 추진할 생각입니다."

음악을 너무 사랑한 탓일까? 혼자 생각해 보면 기업가로서 '야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새벽까지 마음 맞는 사람끼리 어울려 와인 마시고 음악 듣는,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세계를 상대로 이기겠습니까? 대신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뭘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아프리카 시장도 뚫어야 한다며 26일 카메룬으로 떠난 그의 뒷모습은 "큰 기업가가 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그의 말과 달리 무척이나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는 대구 종로초교, 대륜중·고,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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