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진작 한번 찾아뵙는다는 것이 그만···." "아이고! 뭐 할라꼬 이곳까지 찾아왔어요? 안와도 되는데···."
갑작스레 불어 닥친 찬바람이 황금빛 가을 들녘을 스산하게 뒤덮은 지난 28일 오후4시. 경북 칠곡군과의 경계지점이자 구미의 동쪽 끝자락인 인동(신동)의 장영훈(82․사진 가운데) 할아버지· 송남규(78․사진 왼쪽서 두번째) 할머니의 7만원짜리 월셋방은 계절의 변화를 느껴볼 가을 햇살 한 줄기 비추지 않았다. 캄캄한 월셋방은 빚보증으로 가산이 기울고 가족들이 흩어지면서 2003년부터 부부의 보금자리가 된 가슴아픈 사연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했다. 할머니는"우리 두사람 모두 일제 때 잠시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광복 뒤 고향인 인동에 돌아와 살다 1951년 결혼해 두 아들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부엌으로 통하는 나지막한 미닫이문을 지나 안방으로 통하는 문은 더욱 좁고 낮았다. 안방 옆, 불편한 할아버지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두 평 남짓한 방으로 통하는 문은 더욱 낮고 냉기마저 감돌았다. 전기장판을 깔았지만 갑자기 닥친 초겨울 같은 찬 공기를 녹이지는 못했다.
할아버지는 안방과 불편한 몸을 눕혀야 하는 자신의 방 사이에 놓인 나지막한 문턱을 넘기에도 힘이 부친 듯 거의 기다시피했다. 게다가 평소 무릎통증으로 잘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지난 23일 갑자기 쓰러져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서 실려갔다 27일 퇴원한 뒤인지라 몸놀림이 더욱 어둔했다. 청각장애에다 말도 쉽게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 할머니의 통역(?)을 거쳐야 했지만 표정만은 밝고 맑았다.
정부지원에 의지해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 부부를 찾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대한적십자사 경북도지사 구미지구협의회 송명신 회장(사진 왼쪽)과 장윤주(사진 오른쪽서 두 번째) 총무, 전소영(사진 오른쪽) 재무 담당이었다. 송 회장 일행이 20kg쌀 1포대, 라면 1상자와 음료수 1상자를 갖고 이들 부부를 찾은 이유는 7개월전의 일 때문.
구미 원평동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서부봉사관에 지난 3월30일 장 할아버지가 찾아와 불쑥 호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편지봉투를 내놓았다. 청각장애 3급 복지카드를 내보이며 할아버지가 내민 봉투 속에는 꼬깃꼬깃 접은 1천원 권 30장(3만원)이 들어있었다. 승용차로도 30분 넘게 걸리는 멀고 낯선 길을 물어물어 버스타고 왔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3만원을 내놓고 봉사관을 떠났다.
그 뒤 송 회장은 할아버지를 찾아뵐 계획이었으나 봉사활동에 바빠 잊었다가 할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뒤늦게 듣고 이날 점심급식 봉사활동을 마친 후에야 7개월 만에'보은(報恩)의 재회'를 한 것."처음에는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 줄 알았는데'나에게는 큰 돈이라오. 적십자에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해 주이소'라며 돈을 내놓으셔서 너무 감동을 받았다"며 송 회장은 당시 상황을 생생히 들려주었다.
이날'보은의 재회'를 지켜보며 할아버지의 적십자 회비 기부사실을 자세히 알게 된 할머니는"남편 이야기(매일신문 4월2일자 보도)를 본 친척이 전화로 알려주어서 어렴풋이 알았다"면서 "돈도 없으면서 어째 그런 생각을 했는지···"라며 웃었다.
할아버지는 송 회장 일행이 입고 온 노란 적십자 옷을 가르키며 알아듣기 힘든 말로"나도 옷 좀···"이라고 말했다. 남들 눈에는 비록 많은 돈은 아니었겠지만 소중한 3만원의 적십자 회비를 내놓은 장 할아버지는 적십자 봉사복을 입고 남들처럼 봉사를 해보고 싶어서일 것이리라. 송 회장은 "옷 한 벌 갖고 다시 와야겠네"라며 나지막하게 되뇌었다.
어두운 방을 나와 밝은 햇살을 뒤로 하며 작별을 고한 일행들에게 할아버지의 안방 낡은 옛 TV옆 작은 액자 속, 할아버지가 직접 썼다는 비뚤비뚤한'지혜로 살자'라는 문구는 화두(話頭)가 되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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