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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自歎歌'의 이주史

박승희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박승희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근 경상북도와 (사)인문사회연구소가 주최하는 경상북도-중국 동북3성 경제문화교류 사업 일환으로 중국 길림성 알라디 마을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경상도 마을로 불리는 알라디 마을은 대부분 경상북도에 원적지를 둔 이주 1세대부터 4세대까지 재중 동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경상도 이주사의 역사적 현장이자 현재라고 할 수 있는 알라디 마을은 1920년대 이후 주로 경상북도 등지에서 생계 이민이나 개척 이민의 명목으로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의 마을이다.

그곳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송선호라고 자신을 밝힌 할머니는 손을 끌며 굳이 집으로 데려갔다.

할머니는 올해 72세로 이주 1.5세대였다. 1.5세대는 이주 당시 5살에서 10살쯤의 세대를 칭하거나 이주 후 바로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할머니는 간도 땅 화전이란 곳에서 태어나 23살에 알라디 촌으로 시집을 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기억과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시어머니는 안동 풍산 사람으로 19살에 가족과 함께 간도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이주 생애를 들려주던 할머니는 장롱 귀퉁이에서 얼룩진 한지 한 폭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시어머니가 시집올 때부터 간직해오던 것인데, 시집올 때 시어머니의 아버지가 써 주신 글이란다. 낡은 한지 속에는 정성어린 글씨체로 가사가 빼곡히 쓰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탄가'(自歎歌)였다.

흔히 규방가사로 알려진 '자탄가'는 향반계층의 규방 여성들이 널리 쓰던 신변탄식가이다. 어쩌면 이주의 고난 속에 딸의 눈물을 예감한 것일까. 하필이면 아버지가 써 준 글이 자탄가이다. 고향 안동에 대한 정이 남달리 많았던 시어머니는 틈만 나면 이 가사를 읊었다고 한다. 먼 간도 땅에서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인 안동을 떠올리며 자탄가를 불렀을 시어머니의 생애가 잠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문득 송선호 할머니와 그 시어머니, 그리고 시어머니의 아버지로 이어지는 이주의 연대기가 신변을 탄식하는 '자탄가'의 내용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나오면서 자신은 타향에 살고 있는 중국 사람이라는 할머니의 넋두리가 또 다른 '자탄가'처럼 들렸다.

한때는 경상도 사람만 2천500명이 넘었다는 알라디 마을은 이제 소학교 어린이가 3명뿐인 작은 마을이 되었다. 1천 명 가까이가 한국행을 하였으며 800여 명은 북경이나 상해 등지로 떠났다고 한다. 지금 알라디 마을에는 600여 명의 이주 1세대와 2세대가 남아 있다. 600명의 경상도 사람들, 이들에게 알라디 마을은 아마 마지막 고향이 될 것이다. 마을을 떠나오면서 경상북도에서 시작한 그들의 생애를 기록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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