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無言의 무용…가슴에 와닿는 뜨거운 그 뭔가 있어야"

대구 무용계 원로 김기전 초대 시립무용단 상임 안무자

대구 무용계 원로 김기전 전 대구시립무용단 상임 안무자가 대구 무용계 후배들에게 거침없는 쓴소리와 함께 격려를 보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 무용계 원로 김기전 전 대구시립무용단 상임 안무자가 대구 무용계 후배들에게 거침없는 쓴소리와 함께 격려를 보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 무용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매년 대구에서 열리는 거의 대부분의 무용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김기전 초대 대구시립무용단 상임 안무자(1980~1989년 역임)로부터 대구 무용계의 현주소를 짚어 봤다. 김기전 씨는 1957년 대구에 정착한 이래 대구 무용의 씨앗을 뿌린 무용계 대표 원로이자 대구 무용계의 대선배이다.

◆지원금에 목매는 현실 씁쓸

김기전 전 시립무용단 상임 안무자는 '쓴 소리'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현재 대구 무용계에는 지방 및 중앙 정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단체를 만들고 무용수들이 이 작품 저 작품에 중복해 마구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이 이 단체 저 단체, 이 작품 저 작품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하지만 결코 무용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주 작품을 올리기 때문에 실력이 느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체가 너무 많고, 단원이 여러 단체에 중복되기 때문에 어느 한 작품에도 충실하지 못한다. 또 한 사람이 이런 단체, 저런 단체의 사실상의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여기저기 지원금을 번갈아 신청해서 받는 것은 참다운 무용 작품을 만드는 자세가 아니다."

김 선생은 "작품 하나를 만들면서 '선생은 예술 감독, 제자는 안무자, 학생은 출연자'라는 식으로 연구비를 따내고 실적을 올리고 경력을 쌓는다" 며 "재학생을 무용 단원으로 이름을 올려 작품 규모를 부풀려 꾸민다"고 지적했다. 김 선생은 "학생이 출연하는 작품은 연구 발표회라고 해야지 그걸 정식 단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나무랐다.

◆전국과 상호교류 높이 평가

높게 평가하는 부분도 있었다.

"올해 8월 대구시립무용단(상임 안무자 박현옥) 주최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대구현대무용축제'는 훌륭한 시도였다. 대구시립무용단원들이 전국의 역량 있는 안무가들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한 작품을 공연했다는 점은 진일보한 점이다. 시립 무용단 상임 안무자 혼자서 작품을 하는 것보다 전국의 안무가와 무용수를 초청해 함께 공연함으로써 교류 폭을 넓히고 스스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김 선생은 "대구시립무용단 창립 30주년인 내년에는 시립무용단원들이 전국 안무가들과 함께하는 작품은 물론이고 대구의 중견 안무자들이 전국 각지의 뛰어난 무용수들을 팀원으로 구성해 작품을 만들어 본다면 더욱 의미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선생은 또 (사)한국무용협회 대구시지회(회장 강정선)가 지난 6월 주최한 제20회 대구무용제의 기획이 우수했으며 여기서 선발된 대구팀이 10월 말 열린 전국무용제에서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굉장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김 선생은 "대구시립무용단과 무용협회에 새로운 안무자들이 들어오면서 대구 무용이 발전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다"며 특히 "젊은 이사들로 구성된 대구무용협회의 활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형식 파괴는 절도 있게

대구문화재단의 무대공연 작품 지원 방식에 대해서도 못마땅함을 표시했다.

"예술 작품에 평준화란 없다. 여러 단체에서 신청한다고 소액씩 나누어서 지원하는 방식은 재고돼야 한다.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욕먹을 게 두려워서 나눠주기식 지원을 해서야 되겠느냐. 공정하게 심사해서 지원 작품을 선정하고 심사위원을 공개하면 된다."

김 선생은 "무용 인구를 늘리기 위해 무용가들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무용 작품은 온데간데없고 사람 이름만 두각을 나타낸다" 며 "무용을 위한답시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이 작품 저 작품에 이름을 마구 올리는 것은 무용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무용 콩쿠르가 너무 많아 콩쿠르의 가치가 없어지고 무용에 별 관심도 재능도 없는 이들이 양산되고 결국 중도탈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선생은 "모름지기 무용 작품은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아야 하고 한마디 말이 없더라도 그 속에서 강렬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며 "안무자의 개성이랍시고 너무 어렵게 만들거나 관객들에게 다가선답시고 마음대로 대사를 집어넣고 의미 없이 고함을 질러대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김 선생은 "후배들의 무용 작품을 볼 때마다 감사하고 즐거운데 선배 입장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아쉬운 점만 강조했다" 며 "그래도 대구의 무용 작품이 매년 나아지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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