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오페라 메카' 가능성 확인한 축제

'오페라 문학을 만나다'란 주제를 내건 제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지난달 30일 영남오페라단의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로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다. 8년이라면 오페라 본고장인 이태리, 유럽 등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일천한 것이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뜨거워지는 오페라 열기는 우리 오페라의 전망을 낙관케 한다. 축제에 대한 평가야 각자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이번 축제를 요약하면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 '새로움의 도전'이다. 식상한 레퍼토리에서 벗어나는 과감한 시도가 신선한 에너지로 작용해 축제에 보이지 않는 긴장과 역동감을 던져 준 것이다. 개막작 '파우스트'는 출연진 모두에게 힘겨운 작업임과 동시에 관객에게는 일종의 '도박'일 수 있었지만 성공적이었고 '예브게니 오네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등도 같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둘째,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은 오페라 관객의 성숙도가 아닐까 싶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오페라의 메카, 동아시아의 오페라 허브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케 하는 대목이다. 산업으로 말하면, 풍부한 원자재인 성악가와 기술에 해당하는 작곡가가 있고 음향이 좋은 극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뮤지컬의 발달은 오페라와 상생의 파트너십으로 갈 것이다.

특히 개막작인 '파우스트'는 공연이 좋으면 어려운 작품도 청중을 끌고 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화물 선적 사고로 인해 세트와 의상을 잃은 난파선 상황에서 제작진들의 밤잠을 설친 노력으로 가까스로 무대에 올려 위기를 모면한 공연사에 기록될 이례적 사건이었다. 러시아 가수들의 출중한 연기와 가창력이 장치 사고를 뛰어넘어 오페라를 성공케 했다. 오페라의 본질이 '음악'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국제오페라 축제로서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아시아 연출 및 가수들의 합동 공연에 의의가 있었다. 양양과 같은 성악가를 알게 된 점, 중국 연출가가 오페라하우스 시스템에 부러움을 느낀 점, 역으로 '라 트라비아타'의 해외 원정 공연으로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발견한 점은 축제의 결실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창작 오페라 '심산 김창숙'은 창작의 중요성을 백번 외치는 것보다 한 작품의 성공이 중요한 것이란 점에서 좀 더 신중한 자세의 접근 필요성이 느껴졌다. 오페라 갈라쇼 및 부대 행사들은 관객 친화 면에서 분위기가 좋았다.

몇 달 전 미국의 LA에서 바그너 축제가 열렸다. 4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 성대한 행사를 마련하면서 예산 부족이 발생하자 행사 주최측은 LA 시장에게 지불 보증을 요구했고 시는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행사 전에 오페라를 사랑하는 기부자들에 의해 모든 돈이 충당되었다. 상업 도시 LA를 세계에 예술도시로 홍보하자는 전략을 시민들이 알아차렸고 시민들의 자존심에 불이 붙은 것이다.

대구는 '공연중심도시'를 선언한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오페라 예산은 예산 정책의 공정한(?) 잣대에 의해 공평하게 잘리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공연도시는 너무 거창한 구호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예산을 밝히면 대구 시민들 낯이 벌겋게 달아오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구가 희망적인 것은 관객들의 진지한 열정과 가수, 제작, 스태프진들의 구슬땀이다.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예술 정신임을 보여준 것이 축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었다. 남은 것은 오페라 메카로 가는 길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구는 활짝 열어야 하고, 그럴 때 중심이 된다. 사람을 대접하는 도시에 문이 열리고 인재가 모이면 오페라 메카 일정도 눈부시게 당겨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탁계석(예술비평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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