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년째 채소가게 아줌마 '반가운 얼굴'

[대형마트 끊고 살기] <1> 추억·정겨움이 묻어나는 전통시장

'한 달간 대형마트 끊고 살기'에 참가한 체험단이 1일부터 본격적인 시장 장보기에 나섰다. 체험단은 시장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직접 사진으로 찍고 글로 써서 독자들에게 생생한 골목상권 소감을 전달하게 된다. 체험단이 직접 찍은 사진

대구녹색소비자연대와 매일신문사가 공동기획한 '한 달간 대형마트 끊고 살기' 체험단이 1일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거대유통자본의 공세에 맥을 추지 못하는 골목 상권의 부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12명의 주부 및 미혼 여성으로 구성된 체험단이 인터넷에 올린 체험기를 바탕으로 골목상점·시장과 대형마트·SSM(기업형슈퍼마켓)의 비교 분석을 연재합니다. 체험단의 이야기는 그린블로그(http://greenblog.kr)의 '슈퍼우먼' 코너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공간입니다. "이거 얼마예요?"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고, 물어볼 사람조차 없는 마트와는 다릅니다. 체험 프로젝트 첫주. '슈퍼우먼'들은 오랜만에 시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아련한 추억, 반가운 얼굴들과 맞닥뜨렸습니다.

문옥자(39·달서구 월성동) 씨는 11년 만에 송현주공시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처음 신접살림을 차린 집 옆에 있던 시장인데 강산도 한 번 변할 시간을 훌쩍 지나 찾으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합니다. 예쁜 그림과 함께 아케이드가 설치돼 있었고 시장 한쪽 벽면에 '변해야 산다'는 슬로건 아래 상인교육이 있다는 안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상인들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김유정(30·수성구 범어동) 씨는 동대구역전시장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유정 씨에게 추억의 공간입니다. 엄마가 명절이면 속옷을 사줬던 '멋쟁이가게'도 있고, 엄마를 졸라 우렁찬 알람시계를 샀던 금은방도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30년째 채소가게를 하고 있는 아저씨 아줌마도 만났습니다. 삐삐머리를 하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봐왔던 꼬맹이가 어느덧 아기엄마가 되어 시장을 찾아오자 가게 아줌마 얼굴엔 미소가 번집니다. 유정 씨는 "마트처럼 가지런하게 진열된 모습은 아니지만 '두 식구에 이건 많으니 반만 가져가라'며 개개인의 기호에 맞게 챙겨 주시는 시장 아줌마의 모습이 참 정겹다"고 했습니다. 채소가게 아줌마는 "요새 사람들이 시장에 오나? 다 큰 마트 가지. 구색도 많지 않고, 주차하기 힘들고, 카드 안 되니 누가 오겠노. 그런데 우리는 카드 수수료 빼면 남는 거 없어가 안 된다. 우야겠노"라고 하십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면서 거실에 깔 패드가 필요했다는 김정희(34·북구 복현동) 씨는 늘 즐겨찾던 마트 대신 서문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심 좋은 이불가게 아저씨를 만나 상세한 설명까지 들으며, 추천해주신 제품을 싼 값에 구매했다고 합니다. 데리고 갔던 둘째아이 주머니에 2천원까지 넣어주셨다고 하네요. 정희 씨는 "아마도 주차비를 주신 듯하다"며 즐거워 했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대한다는 것이 늘 즐겁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마주 대하다 보면 가끔은 다소 기분이 상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요.

정경준(51·수성구 만촌1동) 씨는 평소 대형제과 체인점을 이용해 오다 굳은 마음 먹고 동네 베이커리에 가서 식빵을 샀다고 합니다. 기왕이면 영세 상점을 이용해보자는 생각에서였죠. 하지만 보기좋게 한 방 먹고 말았습니다. 카드는 안 되고,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그런 거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가게 주인은 빵 2천원어치 사면서 되게 까다롭게 군다는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김정희 씨도 언짢은 경험을 했습니다. 몇 군데 이불가게에서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고 그냥 돌아섰다가 "마수걸이가 어쩌고 저쩌고" 뒤에서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가게 주인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고 합니다.

시장이 마트보다 좋은점이라고 하면 우선 '사람 냄새'를 꼽을 수가 있을 겁니다. 찡그린 얼굴, 불친절한 말투로 남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보다 서로 좋은 얼굴로 향기를 만들어내면 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있을 텐데요. 상인분들의 변화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송현주공시장의 '변해야 산다'는 구호가 참 와닿습니다.

한윤조기자 cgdre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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