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대지진

대재앙이 강요한 선택…딸을 버린 날, 엄마의 삶도 버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선택을 해야 된다면?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소피의 선택'(1982년)이 그랬다. 독일군이 아들과 딸 중 가스실로 보낼 아이를 선택하지 않으면 둘 다 죽이겠다고 총을 겨눈다. 소피(메릴 스트립)는 결국 딸을 선택하고 오열한다. 그 아픈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소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번 주 개봉된 중국 영화 '대지진'에서도 차마 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나온다. 1976년 중국 탕산(唐山). 리웨엔니(쉬판) 가족은 가난하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7월 28일 대지진은 한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리웨엔니는 남편을 잃고, 쌍둥이 자식 팡떵(장징추)과 팡다(리천)는 건물 잔해에 갇힌다. 기적적인 생존이지만, 엄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무너진 건물 때문에 하나만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엄마는 아들 팡다를 선택한다. 딸 팡떵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던 엄마는 팡다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시체들 속에서 죽은 줄 알았던 팡떵이 가까스로 살아난다. 팡떵은 기억을 잃은 채 군인 부부에게 입양되고 이제 팡떵과 팡다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

당시 탕산은 강도 7.8의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갔다. 80~90%의 건물이 모두 무너졌고 탕산 시민 절반인 27만 명이 사망했다.

'대지진'은 탕산 대지진에서부터 9만 명이 목숨을 잃은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까지 지진 피해자들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대재앙을 이겨낸 인간의 위대한 휴머니즘을 그린 블록버스터 영화다. 1억2천만위안(한화 약 201억원)의 제작비로 6억6천만위안(한화 1천130억원)의 매출을 올린 흥행작이다.

중국 대륙을 눈물 바다로 만든 '대지진'은 진한 모성애로 관객의 가슴을 건드린다. "둘 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다가 결국 나지막하게 아들을 구해달라고 말하는 엄마. 그녀는 평생 그 한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러나 딸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잊지 못하고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이사도 가지 않는다. 딸의 죽음을 선택할 때 이미 자신의 삶 또한 버렸는지도 모른다. 딸 또한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충격을 감추고 세월을 견뎌낸다.

영화는 1976년 9월 마오쩌둥의 사망을 시작으로 탕산 재건 등 중국 현대화 과정을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 화해와 용서를 그린 휴먼 드라마이지만 한국 관객이 보기에는 중국인을 위한 계몽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입체감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다"는 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서 일시에 화해된다. '소피의 선택'에서 소피는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면서 늘 죽음을 떠올리지만 '대지진'의 리웨엔니는 팔을 잃은 아들을 위해 헌신하며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남매 또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쓰촨 대지진이 일어나자 구호대로 자원하는 것도 그렇다. 자연재해를 이겨낸 위대한 인간 승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 모른다.

초반 10여 분에 이르는 지진 장면은 볼 만하다. 할리우드산 재난 영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실감이 넘친다.

굳세게 살아가는 쉬판과 무표정한 장징추의 연기가 돋보인다. '야연'(2006년) '집결호'(2007년) 등 주로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펑샤오강 감독이 연출했다. '대지진'의 여주인공 쉬판은 펑샤오강 감독의 부인이기도 하다. 원작은 짱링의 소설 '탕산 대지진'. 러닝 타임 136분. 전체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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